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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으로 세상보기] 국민 건강소망을 이루기 위해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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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보기

종합 07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반은 새해 소원으로 건강을 꼽았다. 그 소원이 세계보건기구(WHO)가 정의한 '단순히 질병이나 불구가 없는 것'이 아니라 '완전한 육체적.정신적 및 사회적 안녕 상태'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이틀에 소주 한 병 꼴로 술을 마시고, 매일 담배를 피워서는(성인 남성의 68%) 그 소망을 이루기 힘들 것이다.

가장 좋은 건강법은 병을 예방하는 것이어서, 술.담배를 끊는 것은 '질병의 1차 예방'이 된다. 병이 생기고 난 뒤에야 병을 찾아 건강하게 하는 의사들의 치료행위, 인술은 '2차 예방'이 된다. 이 불행한 사람들에게는 흔히 다른 문제도 있는데 병은 흔히 저소득층에 많고, 상식과 달리 비만증만 하더라도 경제적 여유가 없는 분, 영양실조에 빠졌던 사람들이 잘 걸린다.

위대한 병리학자 비르효가 "정치는 거대한 스케일의 의학이다"라고 천명한 것은 이 모든 것들을 하나로 보았기 때문이다. 노벨 의학상을 받은 사람들은 이러한 의미에서 세계 최고의 의사라고 할 수 있는데, 에이즈 바이러스를 발견한 몽타니에 박사나 한탄 바이러스를 발견한 이호왕 박사는 알게 모르게 수많은 생명을 구했다고 할 수 있고, 노벨상을 받을 자격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기초(의)과학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질병예방(보건)에 비해 투자가 아주 적게 이뤄지고, 질병예방에 대한 예산은 다시 의료비용(보험)이나 복지 예산에 비해 아주 적다. 이러한 뒤틀림에 대해 생물학자와 기초의학자들은 새로운 논리를 개발하여 대응했다.보건의료가 미래산업이고, 자신들은 새 산업의 역군이라는 것이다. 즉 생명공학(BT)이다.

백혈병의 특효약인 글리벡은 한알에 2만원 이상을 호가하는데, 매일 5~6알을 최소 2개월 이상 먹어야 하고, 안 먹으면 병이 재발하니, 약을 개발한 노바티스사가 벌어들이는 수입은 천문학적일 것이다. 미국 임클론사는 먹는 대장암 약을 개발해 시험 중인데, 성공하여 국내에 도입되면 또 얼마나 돈이 들려는지, 소식을 전함에 앞서 우선 겁이 난다.

비아그라.조코.아반디아 등 각종 신약이 쏟아져 나오고, 이들 '생명'산업의 기술개발로 사람들의 수명과 삶의 질이 나아지고 있다. 그렇다. 보건의료산업은 생명을 구하는 산업이다. 그러나 글리벡의 값을 환자들이 어렵다고 사정을 감안해 내려주지는 않는, 비정한 산업이기도 하다. 국민은 사람의 생명을 지선의 가치로 보고 인술을 실천하라고 의사들에게 요구한다.

그래서 의약분업(의료제공) 문제와 보험공단(의료비용 조달방안) 문제가 해결의 실마리를 못찾고 있는 현실에서 지놈 프로젝트의 성과가 가시화하면서 나타날 미래의 기술이 가져올 기적같은 의술을 내다보는 의사의 마음은 즐겁지만은 않은 것이다.

글리벡이나 일부 고가약을 처방함에 있어 미국 교과서를 따라 결정할 수만은 없다. 우리가 과거 허리띠를 죄며 보릿고개를 넘기면서도 제철.조선.건설 등의 기간산업에 투자하였듯이 국민들의 건강소망을 이뤄주기 위해 우리는 비정한 마음으로 투자의 우선순위를 결정해야만 한다.

李弘揆 <서울대 의대 교수.내분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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