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모들 줄줄이 게이트 연루… 허탈한 DJ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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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매우 침울한 표정이라고 한 측근은 10일 전했다.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4년간(공보비서관.공보수석) 믿고 일을 맡겨온 박준영(朴晙瑩)전 국정홍보처장이 패스21의 윤태식씨와 연루된 사실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金대통령은 입을 굳게 다문 채 아무 말 없이 朴전처장의 사표 수리를 승인했다고 한다.

이에 앞서 金대통령은 지난 9일 측근을 통해 朴전처장에게 금품 또는 주식 수수 여부를 물었고, 朴전처장은 "전혀 받은 것이 없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신광옥(辛光玉)전 민정수석도 지난해 말 진승현씨에게서 돈을 받은 혐의를 받았을 때 이상주(李相周)비서실장을 통해 '할복하겠다'며 결백을 주장했다.

그렇지만 결국 돈을 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그러니 朴전처장의 말을 그대로 믿기도 어렵고, 다른 측근의 연루 사실이 추가로 드러나지 않을 것이란 확신도 못하는 형편이다. 때문에 "金대통령은 누구도 믿을 수 없다는 허탈함을 느끼는 것 같다"고 한 측근은 전했다.

전날까지만 해도 "건강상의 이유로 사의를 표명한 것으로 안다"고 잡아 떼던 청와대 관계자들도 이날은 "金대통령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스스로 물러난 것"이라고 말머리를 돌렸다. 핵심 관계자는 "할 말이 없다. 솔직히 누가 다음 차례일까 하는 걱정을 떨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청와대측은 그동안 "하위직 관계자들의 단순 비리 문제는 몰라도 고위직이 연루된 권력형 비리는 없는 게 국민의 정부의 특징"이라고 주장해 왔다. 신광옥 전 수석이 구속됐을 때만 해도 "여론몰이의 희생양으로 동정의 여지가 있다"는 얘기를 많이 했다.

그러나 민정수석에 이어 공보수석 출신까지 게이트에 연루되고 김정길(金正吉)전 정무수석의 관련설까지 흘러나오자 모두 입을 다물었다.

다른 한 관계자는 "여론이 크게 악화될 가능성이 있으므로 개별 사건으로서가 아니라 민심 관리 차원에서 대응해야 한다"며 통치권 차원의 대책이 있을 것임을 시사했다.

전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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