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DJ노믹스 미완의 개혁] 2. 외채협상-한숨돌린 DJ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1997년 12월 22일 김대중 당선자가 정리해고제 등을 담은 'IMF 플러스'를 수용함으로써 데이비드 립튼 미 재무부 차관의 '면접 시험'은 일단 통과했지만 그것만으로 모든 일이 풀릴 리는 만무했다.

미국 등 선진 13개국과 IMF가 1백억달러 조기 지원을 발표한 25일 이후에도 실제로는 매일 국가부도 직전까지 몰리는 상황이 이어졌다. 한국 정부가 바로 받은 돈은 IMF가 보낸 20억달러가 전부였고 선진 13개국은 80억달러를 보내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당시 한국이 국가부도를 면한 것은 '자금 지원' 덕이 아니라 역사상 유례가 없는 '전세계적 은행 창구지도' 덕이었다.

그때의 급박한 상황을 당시 재정경제원 차관보였던 정덕구 서울대 국제금융연구센터소장은 이제서야 처음으로 털어놓는다.

"매일 오전 3시면 IMF와 서방 선진 7개국(G7) 재무부 또는 중앙은행이 전화로 연결됐다. 우리가 IMF에 국내 어느 은행에 얼마씩 외채 만기가 돌아오는지를 알려주면 IMF는 이를 다시 G7 재무부나 중앙은행에 통보했다. 그러면 G7 정부가 자기네 나라 은행에 대출 만기를 연장하도록 창구지도를 했다.'산소 마스크'를 쓰고 하루하루 연명하는 셈이었다."

'산소 마스크'는 그나마 22일 'DJ의 면접시험' 직후 미국이 G7 정부의 협조를 얻어 놓았기에 가능했다. 미국은 한국의 국가부도를 막긴 막아야겠다고 판단해 일단 '산소 마스크'를 씌워놓았을 뿐 미국이든 일본이든 각국 정부가 직접 한국에 자금을 지원한다는 것은 사실 처음부터 어려운 일이었다.

당시 미 의회는 "도덕적 해이가 우려되는 나라에 왜 미국이 돈을 대느냐"고 행정부를 공격하고 있었고, 행정부는 의회의 비판을 막으면서 국제금융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의 '실질적인 개혁'이 필요했다.

이때 DJ와 국민회의.자민련은 뭘 하고 있었을까.

DJ는 12월 26, 27일 한국노총.민주노총 지도부를 잇따라 만난다. 그러나 '정리해고제에 대한 본격적 논의는 안한다'는 조건이 처음부터 붙어 있는 만남이었다.

22일부터 열린 임시국회는 정리해고제와 관련, 소관이 재경위냐 환경노동위냐만을 따지다가 30일 그냥 회기를 마쳤다. 다음 임시국회는 이듬해 2월로 멀찍이 잡아 놓고서.

'IMF 플러스'에 포함된 적대적 인수.합병(M&A) 허용, 외환관리법 전면 개정, 집단소송제 도입 등은 언급조차 안했다.

이렇게 해를 넘기자 국제 사회에선 'DJ가 IMF 플러스 약속을 지킬 것인가'라는 의문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급기야 미셸 캉드쉬 IMF 총재가 1월 12일, 로런스 서머스 미 재무부 부장관이 15일 한국을 다시 찾는다는 통보가 왔다.

DJ도 급해졌다.1월 4일 저녁 일산 자택에서 대책회의를 소집, 2월로 잡혔던 임시국회를 정리해고제 해결을 위해 1월로 앞당기기로 했다. 사흘 뒤엔 김용환 비상경제대책위원회 공동대표가 '외환관리법 폐지'를 부랴부랴 발표했다.

그러나 미국의 태도는 여전히 냉랭했다.

15일 미 군용기를 타고 한국에 온 서머스 부장관을 이튿날 일산 자택에서 만난 DJ는 "약속한 80억달러의 조속한 지원을 위해 미국이 협조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외채 협상 결과를 보고 나서 얘기하자"는 대답을 들었을 뿐이다. 사실상 '거절'이었다. 서머스는 도리어 "IMF 플러스를 조속히 이행하라"고 요구했다.

DJ는 당시 심정을 이틀 후 열린 첫 국민과의 대화에서 이렇게 얘기한다.

"금고 열쇠를 넘겨받아 열어 보니 천원짜리 한장 없고 빚문서만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G7조차 약속했던 80억달러를 못 주겠다고 한다. 외채 만기를 연장해 주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모라토리엄(대외 지불유예)으로 갈 수밖에 없다."

뉴욕 외채 협상은 이런 분위기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그러나 위기와 기회는 같이 온다던가. 벼랑 끝 협상의 뒤엔 반전(反轉)의 드라마가 준비되고 있었다.

97년 12월 30일 수많은 채권은행들을 어떻게 일일이 접촉해 외채 만기를 연장하나 고심하던 재경원 변양호 국제금융과장(현 재경부 금융정책국장)에게 급한 전갈이 왔다.

미국의 투자은행 JP모건이 묘안을 내놓았다는 것이다.

골자는 두가지-. 한국 정부가 2백50억달러의 국채를 발행해 1백50억달러는 단기 외채를 갚는 데 쓰고 나머지는 외환보유액으로 쌓아두라는 것이었다. 국채 금리는 입찰로 정하자고 했다.

얼핏 그럴 듯했지만 이 제안엔 큰 함정이 있었다. 당시 한국의 국가신용으로 2백50억달러나 되는 국채를 발행하자면 초고금리를 감수해야 했기 때문이다. 변양호의 설명.

"한마디로 궁지에 몰린 한국을 상대로 국제적 고리대금업을 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JP모건이 자기 안을 관철하기 위해 채권단 회의를 소집해 준 것이 우리에겐 뜻밖의 기회가 됐다. 채권은행을 하나하나 만날 필요 없이 이 회의에서 우리 안을 설득하면 됐기 때문이다."

1월 11일 김용환을 수석대표로 한 신.구 정부 공동 외채협상단이 구성됐다. 월가(街)를 꿰고 있던 클리어리 법률회사의 마크 워커 변호사도 합류했다. 그는 변양호가 홍콩을 통해 법률 자문을 수소문하다 우연히 안 인물로 두고두고 한국 대표단에 효자 노릇을 한 월가의 거물이었다.

워커의 진가는 바로 드러났다. 그의 '귀띔' 한마디가 외채 협상 성공의 결정적 전기가 됐던 것이다.

다시 변양호의 회고.

"그는 'JP모건 대표인 어니스트 스턴 전무는 이자를 한푼이라도 더 받는 데 혈안이지만 시티은행 빌 로즈 부회장은 한국 문제를 해결했다는 명예를 원하기 때문에 한국 편'이라며 '임창열 부총리가 로즈에게 편지를 써서 외채 협상 때 사회를 맡아 달라고 부탁하라'고 코치했다. 그의 각본대로 로즈 부회장이 사회를 맡자 JP모건 본사에서 열리던 협상은 시티은행 본사로 장소를 옮겼고 비로소 JP모건의 기세가 한풀 꺾였다."

하마터면 크게 뒤집어쓸 뻔했던 고비를 넘긴 외채 협상은 한번 더 복병을 만난다. 한국 대표단이 20일 워싱턴을 방문했을 때다. 협상단 대리 수석대표였던 유종근 전북지사의 증언.

"로버트 루빈 재무장관을 만났더니 외채 만기 연장만으론 안된다며 국채(외평채) 발행을 병행하라고 했다. JP모건 주장과 비슷했다. 내가 외채 만기부터 연장해 국가 신용을 높인 뒤 국채를 발행할 계획이라고 했더니 그는 그래프까지 그려가며 자기 주장이 맞다고 우겼다. 30여분간 입씨름만 하다 나와 협상이 어떻게 될까 노심초사했다."

다행히 루빈은 협상에 개입하지는 않았다.

이렇게 협상이 시작된 21일(이하 뉴욕 시간). 워커가 국채 발행 대신 기존 단기 외채를 만기 연장만 하고 금리도 입찰이 아닌 협상으로 정하자는 한국 정부안을 발표했다. JP모건이 제동을 걸었지만 아무도 동조하지 않았다. 이로써 JP모건 안은 폐기됐다.

남은 것은 금리였다. 23일 2차 협상에서 채권단이 처음으로 제시한 금리는 10% 조금 못미치는 수준이었다. 일단 한자릿수는 확실했다. 숙소로 돌아온 김용환은 DJ에게 중간 보고를 했다. 그는 당시를 이렇게 기억한다.

"DJ는 한자릿수 금리로 타결될 것 같다고 했더니 처음엔 '정말이오'하며 믿으려 하지 않았다. 거듭 확실하다니까 무척 기뻐했다. 평소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DJ인데 그날은 의외였다."

막바지로 치닫던 협상은 28일 마지막 고비를 넘는다. 이날 새벽 인도네시아가 민간 외채 6백60억달러의 지급을 일시 중단한다고 선언했던 것이다. 무거운 마음으로 협상장에 들어선 정덕구는 비장하게 입을 열었다.

"우리는 모라토리엄을 선언할 생각이 전혀 없다. 그러나 채권단이 계속 무리한 요구를 한다면 인도네시아 같은 사태가 오지 말란 법도 없다."

그의 연설은 채권단의 마음을 움직였다. 채권단은 당초 주장을 크게 완화해 만기별로 7.85~8.35%의 금리를 최종안이라며 제시했고, 한국측은 일단 협상장을 떠나 서울과 분주하게 통화하며 세시간 남짓 숙의한 끝에 이를 수용하기로 했다.

다시 협상장.

워커가 심각한 얼굴로 "한국의 새 제안을 발표하겠다"며 메모지를 꺼내들었다. 한국 대표단은 아연실색했고 채권단은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진 가운데 워커는 만기별로 금리를 불러 나갔다.

그러나 잠시. 금리를 받아 적던 채권단은 워커가 채권단이 낸 금리를 그대로 읽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박장대소했다. 워커의 기발한 조크였던 것이다.

외채 협상은 이렇게 타결됐고 DJ는 비로소 한숨을 돌린다.

<특별취재팀>

팀장:김수길 경제전문기자

기자:김종수.이정재.정경민.이상렬

*** 다음편 '경제國保委- 비대위의 재벌수술'은 다음주 수요일(16일)에 이어집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