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BOOK] ‘독일판 열녀 춘향’레나테 홍 47년의 기다림, 기적의 재회 …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3면

아름다운 기다림 레나테
유권하 지음, 중앙북스
296쪽, 1만3000원

김대중 전 대통령은 그를 일러 ‘독일판 열녀 춘향’이라 했다. 뉴욕타임스는 ‘참고 견뎌온 사랑이 냉전의 벽을 녹였다’는 제목을 뽑았다. 독일 시사주간지 ‘포쿠스’는 “거의 반세기에 걸친 이별이 해피 엔딩으로 마무리됐다”고 보도했다. 세계가 주목한 이 러브 스토리의 주인공은 칠순의 북한 할아버지 홍옥근씨와 독일 할머니 레나테 홍이었다. 20대에 만난 한 남자를 향한 그리움으로 47년을 홀로 살며 기다린 레나테 홍은 재회의 희망을 버리지 않았기에 높은 이념의 벽을 뛰어넘어 꿈을 이뤘다.

이 모든 사연은 한 기자의 집요한 취재로부터 시작됐다. 중앙일보의 베를린 주재 독일 특파원으로 일하던 지은이는 2006년 봄, 남편 옥근씨와 생이별한 뒤 47년 동안 재혼하지 않고 기다려온 레나테의 애절한 얘기를 우연히 들었다. 1950년대 중반, 동독으로 건너온 북한 유학생 홍씨와 사랑에 빠져 결혼한 레나테는 신혼살림을 차린 지 1년 만인 61년에 남편이 북한으로 소환 당하자 두 아들을 홀로 키우며 이산가족의 아픔을 겪어왔다는 것이다. 그해 11월 14일자 중앙일보 1면에 애절한 이 망부가를 소개한 지은이는 남편이 살아있는지 만이라도 알고 싶다는 할머니의 소원을 듣고 핏줄인 양 백방으로 도움의 손길을 뻗었다. 레나테 홍은 이런 그를 ‘셋째 아들’이라 부르며 의지했다.

그로부터 2년, 마침내 꼭꼭 닫혀 있던 평양의 얼음문을 순애보의 사랑이 녹였다. 2008년 7월 25일 레나테 홍은 꿈에도 그리던 홍옥근을 순안공항에서 포옹했다. 71번째 생일을 남편과 함께 보낸 레나테는 “당신을 만나 참으로 행복했습니다”라고 속삭였다.

이 책은 4년에 걸쳐 홍씨 가족사를 제 것처럼 온 몸으로 껴안고 그 눈물겨운 이별과 재회의 모든 과정을 기록한 르포이자 취재일기다. 최근 한국을 다녀간 레나테는 요즘도 함흥에 사는 남편과 한두 달에 한 번꼴로 편지를 주고받는다는 기쁜 소식을 전했다. 남편이 한번 독일을 다녀갈 수 있도록 초청하겠다는 새로운 꿈도 꾸기 시작했다. 허진호 감독과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 의논도 했다.

독자들이 책을 덮으면서 궁금해 할 대목이 하나 있다. 북에 간 홍옥근은 자신을 기다리는 레나테를 두고 왜 새 장가를 들었을까. 지은이는 취재했지만 쓰지 않았다. 다시 한번 기적 같은 상봉의 그날이 찾아오는 데 혹시 방해가 될까 싶은 마음에서다.

정재숙 선임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