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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식 로비 의혹들]'깃털'만 좇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패스21 대주주 윤태식(尹泰植)씨의 정.관계 로비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가 전.현직 공무원과 공기업직원, 언론사 직원 등의 패스21 주식 보유에 집중되면서 근본적인 의혹에 대한 수사는 소홀해졌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의혹의 핵심은 수지 金 살해 혐의가 드러나고 이렇다 할 직업 없이 지내온 그가 어떻게 갑자기 벤처기업가로 성공할 수 있었느냐는 것이다.

패스21 창업과 성장 과정에 국정원 등의 비호와 정.관계 유력인사들의 도움이 있었을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된 상태지만 검찰 수사는 드러난 일부 관련자들에 대해서조차 이렇다 할 성과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와 관련, 한나라당은 김성남(金聖男)부패방지위원장 내정자의 연루 의혹이 있다는 주장까지 하고 있어 주목된다.

검찰은 주식 보유자에 대한 수사를 마무리하는 대로 모 경제신문 K사장과 김현규(金鉉圭)전 의원 등을 시작으로 '몸통' 수사를 벌인다는 방침이다.

◇ 패스21 설립.성장 의혹=중학교 중퇴 학력에 공문서위조죄 등으로 2년6개월 동안 징역을 산 尹씨가 지문인식 기술로 벤처기업을 세운 것은 특정기관의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냐는 의혹이다.

尹씨는 1996년 출소한 뒤 이듬해 지문인식 기술을 개발 중인 B사에 입사했으며 이 회사가 외환위기 속에서 어려워지자 채무를 인수하는 조건으로 B사 인력을 그대로 흡수해 98년 9월 패스21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尹씨는 사업 초기 모 경제신문 사장 K씨의 부인인 Y씨의 건물에 입주하고 운영비를 지원받는 등 밀접한 관계를 맺었다.

검찰은 패스21이 본격적인 성장을 하게 된 것은 99년 12월 신기술 발표회를 열면서부터로 보고 있다. 발표회 전후인 99년 12월부터 2000년 1월 사이 세차례에 걸쳐 60만주의 유상증자가 실시됐고 패스21 주식은 장외시장에서 본격적으로 거래돼 2000년 3월에는 주당 20만원선으로 치솟았다.

이와 관련, 일부 정치인들이 패스21 신기술 발표회에 참가했으며 2000년 1월 尹씨가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참석한 '새천년벤처인과의 만남' 행사에 참여한 사실이 확인됐지만 정확한 경위는 규명되지 않고 있다. 또한 尹씨가 K씨를 통해 정치권 인사들에게 로비를 벌였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 尹씨 비자금 의혹=금융감독원이 당초 검찰에 수사의뢰한 내용은 尹씨가 패스21의 회사 설립과 유상증자 과정에서 주주들로부터 모은 20억원을 입금하지 않고 개인적으로 빼돌렸다는 의혹이다. 검찰은 尹씨가 빼돌린 20억원 이외에도 패스21 주식을 처분하면서 30억원의 자금을 조성한 것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尹씨가 50억원 정도의 비자금을 조성해 로비자금으로 일부를 사용하지 않았느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증자 대금은 회사 부채를 갚는 데 썼고 주식을 판 돈은 지난해 8월 미국의 지문인식 회사 베리디콤을 3백60만달러에 인수하는 데 사용했다"는 尹씨의 진술을 받았을 뿐 확실한 사용처는 규명되지 않고 있다.

◇ 미흡한 국정원 비호 의혹 수사=87년 당시 尹씨 수사를 담당했고 이후에도 동향 파악 임무를 맡았던 전 국정원 직원 김종호씨가 패스21의 자회사인 바이오패스의 이사로 등재됐고 尹씨로부터 일부 금품을 받은 단서를 포착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金씨가 잠적한 상태여서 본격적인 수사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국정원은 수지 金 사건 이후 尹씨를 지속적으로 관리해와 관계자들이 패스21 주식과 관련됐을 가능성도 크나 주식보유 여부조차 밝혀지지 않은 상태다.

◇ 윤태식 리스트 출처 논란=패스21 주식을 보유한 51명의 정.관계 및 언론인 명단에 대해서도 논란이 일고 있다. 이 명단에는 부인 명의 보유 여부까지 적혀 있는 등 주식 보유 사실이 비교적 정확한 것으로 확인되면서 국가기관이 아니고서는 이를 파악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문제는 주식을 갖고 있는 인사들이 특정 분야에 집중돼 있다는 점이다.정치권 인사는 이미 보유 사실이 공개된 한나라당 서청원(徐淸源)의원과 김현규 전의원 등 두명밖에 없으며 국정원 인사는 단 한명도 없다. 공무원들의 경우도 4급 이하의 중하위직이 대부분이지만 언론계 인사는 25명이나 된다.

이 때문에 법조계 주변에선 "尹씨의 정.관계 로비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의 방향을 언론계 쪽으로 돌리기 위해 尹씨를 지속적으로 비호한 측에서 작성해 유포한 것"이라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김원배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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