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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리앗 미국은 인기 없게 마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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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방한 중인 미첼 리스 미 국무부 정책기획실장이 2일 오후 연세대에서 대학생 60여명과 대화를 나눴다. 리스 실장은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설립에 주도적 역할을 맡는 등 미 행정부 내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한반도 전문가다.

이날 자리는 그가 먼저 제안해 마련됐다. 한국 젊은이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싶었다는 설명이다.

김기정 연세대 정외과 교수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토론회에서 그는 "오늘 들은 얘기를 파월 장관이나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 지명자에게 그대로 전달하겠다. 여러분의 발언은 미국의 한반도 정책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적극적인 발언을 유도했다.

이후 2시간 동안 ▶반미 감정▶북한 정권 평가▶북핵 문제 등 민감한 주제를 놓고 반박과 재반박을 주고받으며 학생들과 치열한 논리대결을 벌였다. 중간 중간 10여차례 폭소가 터지기도 했다. 통역이 있었지만 대부분의 학생은 영어로 직접 묻고 답했다.

리스 실장은 토론이 끝난 뒤 "내가 한국을 보다 잘 이해하는 데 정말 큰 도움이 됐다"며 만족스러워했다. 학생들이 넥타이를 선물하자 즉석에서 양복 상의를 벗고 넥타이를 바꿔 매기도 했다.

?골리앗은 인기가 없게 마련=반미 감정이 가장 핫이슈였다. 한 여학생은 "한국의 대학생들이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에게 그다지 좋지 않은 감정이 있는 게 사실"이라며 "이라크 문제 등 미국의 여러 일방적 외교행태를 볼 때 북핵 문제를 다자주의를 통해 해결하겠다는 것도 단지 립서비스라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리스 실장은 "전세계적으로 반미 감정은 미국이 초강대국으로서 주도적 위치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며 "성경에도 골리앗은 인기가 없고 다윗만 인기가 많다. 사람들은 뭐가 잘못되면 모두 미국 탓이라고 생각하는 게 오히려 문제"라고 해명했다.

그러자 다른 여학생이 손을 들더니 "미국은 좀 오만해 보인다는 게 진짜 문제"라며 "골리앗은 악하고 오만한 캐릭터인데, 스스로 미국을 골리앗에 비유한 것은 적절치 않다"고 꼬집었다.

이에 리스 실장은 "그러잖아도 동맹국들에 거만하게 비치지 않도록 최근엔 대단히 조심스럽게 관계를 유지하려 하고 있다"며 이해를 구했다.

한 학생이 "한국에서 반미 감정이 커지는 데에는 '왜 북한의 어려운 형제를 돕는 문제에 미국이 자꾸 끼어들려고 하느냐'는 불만도 작용하고 있다"고 하자, 리스 실장은 "부시 행정부도 김정일 정권과 북한 주민은 확실히 구분하고 있다"며 "북한 정권에는 징벌을 가하되, 주민에게는 피해가 가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하고 있다"고 답했다.

?북핵, 리비아식 해결이 최선=북핵 문제에서는 리비아식 해법을 거듭 강조했다.

그는 "우리는 지난 6월 이후 5개월 동안 기다리고 있지만 북한은 아직도 협상 테이블에 나오지 않고 있다"며 "북한이 회담장에 돌아오면 리비아 모델의 혜택을 자세히 설명해줄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국과 상호 연락사무소를 개설하고, 상무협상을 체결하며,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활동하게 된 리비아의 사례를 일일이 열거했다.

박신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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