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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 "혹시나" 하다 "역시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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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지난 8월 말 정부 압력으로 김정태 국민은행장이 퇴진할 때 의외로 반색한 곳이 SK였다. 배경은 이렇다.

국민은행의 외국인 지분이 77%나 되다 보니 이들이 반대하면 김 행장 퇴진이 쉽지 않으리란 관측이 많았다. 그러나 금융감독위원회는 '문책적 경고'까지 빼내들고 밀어붙였다. 이때부터 외국인 주주들은 슬금슬금 발을 빼기 시작했다. 최대 주주인 ING의 틸망 회장이 "국민은행과 관련해 코멘트할 위치에 있지 않다"고 꼬리를 내리면서 승부는 갈렸다.

이를 지켜본 SK 측은 "외국인 주주들도 정부 눈치를 본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며 안도했다. 외국계 펀드와 경영권 분쟁에 휩싸인 SK로선 정부가 "국가 기간산업인 정유회사를 함부로 넘보지 말라"고 한마디만 해주면 쉽사리 도전을 제압할 수 있을 것으로 자신했다.

비단 SK뿐만 아니다. 외국계 자본의 거센 공세에 속앓이 하던 대기업들 사이에 '정부 대망론'이 빠르게 퍼져갔다. 재벌을 못마땅하게 여겨도 최종 순간에는 정부의 팔이 안으로 굽지 않겠느냐는 희망 섞인 기대였다. 9월 이후 노무현 대통령의 해외 순방에 재계인사들이 대거 따라나선 배경에는 이런 점도 작용했다. 마지막 보루인 정부에 기대고 싶다는 심정은 그만큼 절박했다.

그러나 열린우리당이 지난 1일 국회 법사위에서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재계는 실낱 같은 희망을 접는 분위기다. 대기업에 대한 집권여당의 뿌리깊은 불신을 다시 한번 확인했기 때문이다. 전경련 관계자는 "정부가 낸 개정안을 토씨 하나 고치지 않고 넘겼다"면서 "혹시나 하며 여당의 소매를 잡고 매달린 우리가 순진했다"고 허탈해 했다. 이제 대기업들은 오로지 내부에 쌓아놓은 '현금'밖에 믿을 곳이 없게 됐다.

출범 이후 참여정부는 재벌개혁을 거침없이 밀어붙이고 있다. "대기업의 어려운 현실도 반영해야 한다"는 여당 내부의 온건론은 "재벌 편들기냐""개혁을 포기하자는 거냐"는 목소리에 간단히 묻혀버렸다.

그렇다면 과연 열린우리당의 주장대로 개혁은 지고의 선(善)일까.

1789~1794년의 프랑스 대혁명은 세계 혁명사의 금자탑으로 꼽힌다. 당시 그곳에는 원소 단위를 처음 밝혀내고, '질량보존의 법칙'을 입증한 라부아지에라는 화학자가 있었다. 오늘날 '화학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인물이다.

그런 라부아지에는 1794년 5월 8일 단두대에서 목이 잘렸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서민들의 세금을 대납해 주고, 나중에 높은 이자를 매겨 돌려받는 세금징수원 조합에 가입한 전력 때문이었다.

라부아지에가 체포되자 탄원이 줄을 이었다. 중요한 실험을 끝내도록 판결을 일주일만 연기해 달라고도 했다. 그러자 혁명그룹의 일원인 수석재판관 코피나르가 이렇게 잘랐다.

"공화국은 과학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혁명은 신속한 재판을 원하고 있다."

라부아지에의 죽음은 당시 지식인 사회에 큰 충격이었다. 20대 초반의 화학자인 듀폰 드 느무르(1771~1834년)도 그중 한명이었다. 그는 곧바로 미국에 망명, 1802년 델라웨어주에 화학공장을 세웠다. 오늘날까지 202년 동안 세계 화학시장을 주름잡는 듀폰이 프랑스가 아니라 미국 회사가 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개혁이 아무리 시대적 과제라도 앞뒤 좌우를 잘 살피면서 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사례다. 당대에는 선의의 행위가 역사의 긴 흐름 속에서 돌이킬 수 없는 과오로 입증된 경우는 하나 둘이 아니었다.

이철호 산업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