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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로와이드] 아내 대신 앞치마 두른 '주부'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0면

"남자가 무슨 앞치마야?"

"오죽 못 났으면 남자가 집에서 살림을 해?"

집안 살림이 직업이 돼버린 남편들이 조금씩 늘고 있다. 자의반 타의반이지만 이들을 바라보는 주위의 시선은 아직도 곱지 않다. '남자는 바깥일, 여자는 집안일'이라는 고정 관념 때문이다. 밑바닥에는 '여자들이 집에서 하는 일은 직업이 아니다'라는 남자들의 선입관이 짙게 깔려 있다.

여기에 맞서 출사표를 던진 남자들이 있다. "살림의 전문화" "집안일도 프로 시대"를 외치며 '전업 주부'가 아닌 '전업 남편'을 선언한 세 명의 남자를 만나보자. 난공불락(難攻不落)의 철옹성으로 여겨지던 당신의 선입관에 금이 갈지도 모른다.

#나는 집으로 출근한다

"살림을 해보니 주부들 마음을 알겠더라구요."

올해로 살림 경력 6년째인 차영회(車榮會.43.인천시 계양구 작전동)씨의 첫마디였다. 살림을 맡기 시작한 것은 국제통화기금(IMF)사태로 다니던 출판사가 문을 닫으면서부터다.

1년도 안돼 퇴직금이 바닥나자 車씨 부부는 역할 분담에 합의했다. 부인 이승복(35)씨는 파트타임으로 일하던 학습지 회사에 정식 입사하고, 車씨는 본격적으로 집안일에 뛰어들었다.

처음에는 실수 연발이었다. "일주일 내내 계란 프라이를 만들어줬더니 나중에 아이들이 숟가락을 안들어요. 그래서 식탁 옆에 굶주리는 아프리카 어린이 사진을 붙여 놨죠."

낯선 집안일보다 힘들었던 것은 아이들의 이해였다. 車씨는 5년 전 딸(당시 초등1)이 버스 안에서 대뜸 "아빠가 집에 있어 너무 창피하다"고 말하던 순간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학교에서 '아빠 자랑' 발표가 있었는데 아무 말도 못했다는 것이다. 차씨는 억장이 무너졌다. "우리 집이 아빠의 직장"이라고 설명했지만 아이들이 받아들이는데 5년이나 걸렸다.

요즘은 아이들 귀가 시간이 車씨에게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 딸(12).아들(10)과 함께 감자도 썰고 시금치도 다듬으며 하루 있었던 일을 서로 나누기 때문이다.

"사람은 양성(兩性)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굳이 딸과 아들의 성 역할을 구분짓지 않으려 합니다."

車씨는 인터넷에서 주부들의 고민 상담사로 통한다. 사이버 주부대학(http://www.cyberjubu.com)의 '지성과 감성' 코너에 1년 넘게 주부일기를 연재하고 있다. 車씨는 "주부들의 스트레스는 힘든 가사 때문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오히려 가사의 의미를 무시하는 남편의 태도가 스트레스 주요 원인이라는 것이다.

車씨는 이제 영락없는 전업 남편이다. "시장에 가면 바깥 사람(부인)과 아이들 옷은 사지만 제 옷은 절대 못사요. 콩나물 값을 생각하면 엄두가 안나지요."

#살림하는 남자의 철학

3년 전부터 살림을 시작한 오성근(吳成根.37.경기도 과천시 중앙동)씨의 부부싸움은 특이하다.

따질 일이 있으면 안방으로 들어가 컴퓨터부터 켠다. 서로 불만을 일일이 적고 나오면 다른 사람이 들어가 대꾸를 하는 식이다. 그러면서 두세번 방을 들락거리다 보면 서로 웃고 만다. 목소리에 감정이 실리면 사소한 일도 큰 싸움이 되는 것을 경험한 吳씨의 비책이다.

"의.식.주와 육아문제 등 모든 부문에서 제 철학을 실현시키려고 합니다. 그게 집안의 경쟁력이죠."

吳씨에게 가정은 직장이자 하나의 실험실이다. 吳씨는 딸(3)의 출산과 함께 집안일을 시작했다. 맞벌이 부부였던 吳씨(당시 한의원 개업 컨설팅업)가 부인(32.공무원)과 의논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결혼 전 "아이는 부모가 직접 키우고, 당신이 원치 않으면 내가 키워도 무방하다"는 생각을 부인에게 전한 터였다.

吳씨는 "솔직히 직장 다니는 게 더 편해요. 직장 다닐 때보다 나만의 시간을 갖기가 더 힘들어요"라고 털어놓았다. 남자들은 대부분 집안일이라고 하면 요리나 빨래, 청소를 떠올리지만 빙산의 일각이라는 것이다. 정작 힘든 일은 육아라고 吳씨는 말한다.

아이의 자연스런 욕구를 꺾지 않는 '자연주의 육아'를 강조하는 吳씨는 비가 오더라도 아이와 함께 산책을 나간다.

요즘은 "둘째를 낳자"는 부인의 요구가 거세다. "'하나만 낳자'는 주부들의 심정이 백번 이해가 간다"는 吳씨다.

환경 문제에 관심이 많은 吳씨는 집안일을 맡으면서 식단부터 바꿨다. 잡곡밥은 물론 효소를 이용한 음료와 두유도 직접 만드는 등 자연식으로 전환했다. 덕분에 10년 넘게 고생하던 부인의 수족냉증도 말끔히 치유됐다.

"살림은 잠깐 안하면 티가 나고, 열심히 해도 티가 안나는 일이죠. 그러므로 남자들도 집안일이 결코 쉽지가 않다는 것을 실감할 필요가 있습니다."

MBC '아주 특별한 아침'의 '세남자와 아기 바구니'코너에도 출연 중인 吳씨는 "10년이나 20년 뒤에는 살림하는 남자가 낯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글=백성호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 46세.경력 4년 배춘복씨

#나는 살림 디자이너

*** 46세.경력 4년 배춘복씨

#나는 살림 디자이너

1998년 2월 27일. 배춘복(裵春福.46.경기도 고양시 화정1동)씨는 이날을 '인디펜던스 데이(독립기념일)'라고 부른다. 부인에게서 살림은 물론 아이들 교육 문제까지 넘겨 받았기 때문이다.

총포상을 운영하던 裵씨 역시 살림을 맡은 계기는 IMF사태였다. "손님이 줄면서 살림이 쪼달리자 아내가 직접 나서더라구요.결혼 전 직장 경험을 살려 동대문에서 옷가게를 시작한 거죠."

裵씨도 처음 직장을 잃은 상실감에 방황해야 했다. "IMF로 실직한 친구 대부분이 등산이나 낚시로 소일하며 제자리를 못잡고 있어요." 이들을 지켜보면서 裵씨는 문득 '가정도 하나의 회사'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이때부터 총포상을 하면서 배웠던 경영 노하우를 하나둘 집안에 적용하며 살림을 디자인하기 시작했다.

우선 한달간 살림 지출 내역을 뽑은 뒤 줄일 수 있는 부분을 꼽아봤다. "조명과 전기시설을 체크해 여기저기 전기 차단기를 설치했죠. 실내 온도에 따라 온수 밸브를 조절했더니 한달 관리비가 15만원이나 줄더라구요."

아이들 교육 방식도 전면 수정했다.6곳씩 다니던 학원을 모두 그만두게 한 뒤 한달 동안 무조건 놀라고 했다. 그랬더니 '마마보이'였던 아이들이 몰라보게 적극성을 띠기 시작해 한달 뒤 스스로 학원을 골라 다니겠다고 하더라는 것이다. 裵씨는 아이들이 원하는 학원 2곳씩만 보냈다.

裵씨는 요즘 틈날 때마다 중고 시장을 찾는다.못쓰는 재봉틀이나 유리판 등을 구입해 집안을 직접 꾸미기 시작했다. "집안일은 찾아서 하기 나름이에요. 무궁무진하게 할 일이 많다는 게 너무 좋아요."

부인이 가게를 마치는 오전 3시에는 어김없이 차를 가지고 데리러 간다. "회식이 있을 땐 이부자리도 미리 깔아놓고 아침엔 꼭 해장국을 끓입니다. 이게 제 직업의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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