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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사 "주식만으론 살 수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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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메리츠증권 지점 영업직원들은 요즘 하루종일 '통화 중'이다. 영업직원들은 서너달째 생면부지의 고객에게 임의로 전화를 거는 콜드콜을 돌리고 있다. 고객 반응은 차갑기만 하다.

▶ 증권사 지점의 대표적 상징인 커다란 시세 전광판과 소파가 있던 과거의 메리츠 지점 모습(사진 (左))과 전광판을 없애고 영업직원 앞에 칸막이를 설치한 압구정동 지점의 현재 모습(사진 (右)). 메리츠증권은 이 같은 방식으로 30개 지점을 뜯어고치고 있다.[메리츠증권 제공]

이 증권사 양도열 압구정동 지점장은 "100통의 전화를 걸면 겨우 한두 건의 상담이 가능할 정도로 힘든 과정"이라고 말했다. 이 지점의 한 영업직원은 "처음엔 썰렁한 고객 반응에 스트레스를 받는 직원이 많았지만 경험이 쌓이다 보니 고객을 대하는 두려움이 없어지고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김한 메리츠증권 대표이사 부회장은 "영업직원들의 전투력(?)을 강화해 보험 세일즈맨처럼 고객을 찾아다니는 프로페셔널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증권사가 달라지고 있다.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영업방식과 객장 배치를 바꾸는가 하면 주식 대신 금융상품 판매를 적극 권장하는 새로운 모습도 나타나고 있다.

◆ 시세판 없어진다=미래에셋증권은 1999년 영업을 시작하면서 증권사 영업점의 상징인 시세판을 설치하지 않았다. 종합자산관리 증권사를 표방하면서 주식거래만 하는 곳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조치였다.

최근 상당수 증권사가 시세판을 없앴다. 고객 차별화를 위해서다. 현재 시세판이 없는 지점은 ▶대신증권 전국 116개 지점 중 13곳▶삼성증권 105개 지점 중 11곳▶대우증권 119개 중 3곳 등이다.

메리츠증권 압구정지점의 경우 시세판을 없애면서 객장 내 영업직원 자리도 바꿨다. 고객이 들어올 수 있는 공간을 일부 남겨두고 정면에 칸막이를 설치했다. 지점 측은 "좀더 아늑하고 편안하게 고객과 만나기 위해 방 분위기가 나도록 객장 배치를 바꿨다"고 말했다. 수익을 많이 가져다주는 고객은 따로 모시겠다는 것이다.

사무실 배치도 달라졌다. 굿모닝신한증권은 이미 전 지점의 3분의 1에 고객과의 개별적인 상담을 위해 영업직원 앞에 칸막이를 설치했으며, 앞으로 이를 확대할 예정이다. 지주회사 특성을 살려 조흥.신한은행 점포 안에 은행 내 증권지점(BIB)도 운영 중이다.

동양종금증권 골드센터 지점의 경우 내부를 아예 상담실 위주로 꾸몄다. 단순한 청약이나 계좌 개설 업무는 일반 창구에서 취급하도록 아예 출입구도 따로 만들었다.

◆ 주식보다는 금융상품 팔아라=고객 주문을 받아 주식을 사고파는 게 증권사 지점의 통상적인 영업이었다. 이 과정에서 '뜨는 주식'을 계속 추천해야 주문이 많아지고 증권사 수수료도 늘어나지만 무리하게 회전율을 높이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러나 미래에셋증권에는 고객 주문을 받아 주식을 사고파는 브로커가 38개 지점을 통틀어 9명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자산관리 전문가들로 채워져 있다.

삼성증권도 지난 10월부터 '자산 증대 캠페인'을 벌여 두 달 동안 3조원대의 금융상품을 유치했으며, LG투자증권 등도 예탁자산 늘리기 경쟁에 뛰어들었다. 메리츠증권은 개별 주식의 매매보다 펀드 판매에 주력하는 식으로 영업방식을 바꾸고 있다.

강창희 미래에셋투신 투자교육연구소장은 "외국의 사례로 볼 때 자산관리 전문 증권사나 인터넷 증권사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며 "자산관리 서비스의 경우 단위 예탁자산당 수입이 위탁매매에 비해 줄어들기 때문에 예탁자산을 늘리거나 비용을 줄이는 방법밖에 없다"고 말했다.

서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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