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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리티의 소리] 그림책서만 보는 여우·살쾡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고대로부터 인간은 에너지원인 육류를 수렵행위를 통해 확보, 조달해 왔다. 오늘날 가금.가축화된 동물들은 이런 수렵의 역사적 산물이기도 하다.

농경국가였던 과거, 대량 사육이 어려웠던 당시의 실정상 임자 없는 야생동물의 포획이야말로 서민들에겐 대가를 지불치 않고서도 육류를 섭취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자연스레 수렵문화는 보편적.일상적인 것으로 우리네 삶에 뿌리내렸다.

오늘날 야생동물에 대한 밀렵행위가 성행하고 있는 것은 이같은 전통적 수렵생활 문화가 우리들만의 일그러진 정력 보신풍토와 결합된 결과다. 이것이 현대의 야생동물을 보호해야 한다는 제도적 규제와 충돌하고 있는 것이다.

밀렵행위로 와해된 생태계의 실태는 알려진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 우리 곁에 함께 살아왔던 여우와 살쾡이가 이미 그림책에서만 볼 수 있게 돼버린 것처럼 사라진 야생동물이 적지 않다.

산과 바닷가 곳곳으로 도로가 뚫려 차량 통행이 늘고 사람들이 야생동물들의 삶의 터전을 침범해 들어가면서 살 곳이 줄어든 야생동물이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일도 늘고 있다. 수달.왜가리.백로로 가두리축양장이, 노루.고라니.멧돼지.오리로 농작물 재배농가가, 청설모로 버섯.잣 재배에, 까치로 과수원.전기사업이 곤욕을 치르고 있다.

야생동물과 인간의 적대적 대립관계는 항상 경제적 이해가 맞닥뜨릴 때 일어난다. 야생동물들이 조금이라도 인간의 생활에 손해를 끼치면 곧 '유해조수'로 지목해 합법적으로 생명을 위협한다. 인간이 먼저 그들의 서식 터전을 침범한 탓에 그들이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는 것임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말이다. 과연 이것이 합당한 것일까.

수많은 사람들이 산을 찾는다. 산행에서 사람들은 육체적인 건강과 함께 정신적인 풍요로움과 마음의 여유를 얻는다. 산은 우리에게 자연 속에 살아 숨쉬는 수많은 생명들의 활기를 만나게 하고 미물일지언정 생명의 아름다움을 보고 듣고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자연생태계가 우리에게 주는 이런 값진 선물을 우리도 후대에 온전히 넘겨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언젠가 한 학생이 다친 참새 한 마리가 있다며 구조를 요청해 온 적이 있다.생태계에 대한 간섭일지 모른다는 생각도 했지만 그 흔한 참새 한 마리의 생명일지라도 애처롭게 생각할 줄 아는, 감성이 살아 있는 학생의 마음이 너무도 예뻐 먼 곳까지 가서 데려와 고쳐주었다.

다친 참새를 안고 보살펴 주는 동안 학생은 참새의 펄떡이는 심장과 따뜻한 체온을 느꼈을 것이고, 하나의 생명을 살린다는 소중한 마음이 새록새록 자라고 있었을 것이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 역시 다른 생물종과 함께 어우러져 살아갈 수밖에 없는 한갓 포유동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인식의 전환이 시급하다.

한적한 도로에서 자동차를 운전하다가 오리 부부가 새끼들을 한 줄로 거느리고 종종걸음으로 도로를 건널 때, 잠시 차를 갓길에 멈춰 세우고 그들의 앙증맞고 귀여운 모습을 감상하는 여유를 가져보자. 그리고 오늘날 우리들이 잃어버리고 사는 것은 무엇인지, 진정 소중하게 여겨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해보자.

조순만 <시민모임 초록빛깔사람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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