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에서] 제야의 폭죽놀이 풍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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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슈우- 꽝'.

이틀간의 성탄 휴일이 끝나고 시민들이 다시 업무에 복귀한 12월 27일. 다시 문을 연 가게에는 '폭죽입하'라는 큼지막한 플래카드가 내걸린다. 이날 밤부터 베를린에서는 폭죽 터지는 소리가 간간이 들린다. 31일 밤에 쓰려고 사놓은 폭죽을 성미 급한 아이들이 미리 터뜨리는 것이다. 평소 남에게 폐 끼치는 일을 삼가는 독일인들이지만 이 소리만큼은 어느 정도 이해한다.

폭죽소리는 날이 갈수록 강도를 더해 '질베스터'라 부르는 31일 밤 절정에 달한다. 이날 밤 베를린 중심부 브란덴부르크문 주변은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매캐한 화약냄새가 코를 찌르는 가운데 형형색색의 폭죽들이 밤새도록 제야의 하늘을 수놓는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대형 폭죽이 터질 때마다 탄성과 박수가 터진다. 방송사들도 브란덴부르크문 앞에 야외 스튜디오를 가설해 넣고 떠들썩한 쇼를 생방송해가며 분위기를 돋운다.

지난해 1백만명에 달했던 인파가 올해는 1백20만명에 이를 것으로 경찰은 예상하고 있다. 베를린뿐이 아니다. 북해에서 알프스까지, 라인강에서 오데르강까지 전 독일에 걸쳐 이날 밤 하늘은 불꽃놀이의 바다가 된다.

한해를 마감하고 새해를 맞이하는 독일인들의 의식은 이처럼 좀 소란스럽다. 이웃 프랑스인들이 새해의 시작을 알리는 TV의 시보 중계에 맞춰 아무나 붙잡고 볼을 맞대긴 해도 비교적 차분하게 새해를 맞이하는 것과는 한참 다른 풍경이다.

요즘은 서울에서도 제야에 폭죽을 터뜨리는 젊은이들이 느는 모양이다. 독일의 제야 불꽃놀이 풍습이 멀리 중국에서 왔듯 어차피 문화란 유전(流轉)하는 것이니 탓할 건 없다.

술로 지새는 송년회보다는 오히려 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기왕이면 다닥다닥한 아파트촌에 꽝 꽝 울려대는 독일식 폭죽소리보다는 집에서 가족.친지들끼리 오붓하게 보내는 프랑스식 송구영신(送舊迎新)이 더 낫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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