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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노트] 캄보디아에서 만난 '측은지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지난 20일 오전 6시30분 캄보디아 바탐방의 고아원 '평화로운 어린이 집Ⅱ'.

이곳에서 묵으며 의료봉사중이던 원광대 의대와 원불교 관계자들은 또 다시 '보람찬 하루'를 보내기 위해 안남미로 끓인 죽을 뜨면서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식사가 끝날 무렵 호흡기내과 담당인 정은택(鄭垠澤.44)교수가 원불교 강남교당 박청수(朴淸秀)교무에게 질문공세를 퍼붓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무엇을 주로 먹느냐, 한달 식비는 얼마나 드느냐, 애들 옷이 너무 남루한데 빨래는 안 하느냐, 원불교와 이 고아원의 관계는 어떻게 되느냐 등등. 항상 소녀처럼 웃으며 사람들과 대화하던 朴교무였지만 하도 꼬치꼬치 묻는 鄭교수의 질문에 목소리의 톤이 약간 올라가려는 순간이었다.

"제가 여기 기부를 좀 하고 싶어서요.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돈이지만, 돌아가는 대로 천만원 보내드리겠습니다."

鄭교수의 느닷없는 제의에 朴교무도 깜짝 놀랐다.

"그 돈이면 이곳 아이들 거의 2년치 식비인데, 정말 감사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드셨나요."

鄭교수가 조용히 말했다.

"오기 전엔 잘 몰랐는데 여기서 사는 사람들, 특히 애들을 보니 우리가 너무 가진게 많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물질적으로도 그렇고 또 정신적으로도요. 사실 연초에 차를 바꾸기로 아내와 약속했는데, 여기와 보니 안되겠더라구요. 그 돈이면 아이들이 당분간 밥 걱정은 없다니 그렇게 해야 제 마음이 편하겠습니다."

옆에 있던 박석돈(朴錫敦.52)의대 학장이 거들었다."우리 1950년대가 딱 이랬지. 미군 옥수수가루 푸대로 옷해 입고 다니던 생각 안나. 그랬던 우리가 이렇게 다른 사람을 돕게 됐구먼."

자기보다 못한 사람을 보고 불쌍히 여기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하지만 세상을 살아가면서 그런 본성은 잃기 쉽다. 그것을 일깨우는 것이 종교의 본분이리라.

이번 행사에서 의료진이 만났던 것은 그저 아프고 가난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것은 잊고 있었던 우리의 옛 모습이었으며 또한 우리 마음속 '측은지심'이었다.

바탐방(캄보디아)=정형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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