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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권도공원 입지, 국익 우선해 선정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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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우리나라가 태권도 종주국으로서 추진 중인 세계태권도공원 조성사업이 자칫 국내용 사업으로 전락할 위기에 처해 있다. 태권도공원이 가져다줄 막대한 경제적.문화적 파급효과를 고려하면 안타까운 일이다. 문화관광부가 1999년 말 태권도공원 건립계획을 발표한 뒤 전국의 지방자치단체들이 유치경쟁에 뛰어들어 27개 지자체가 유치 신청을 해놓은 상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유치전이 과열 양상을 보이면서 본질을 흐리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지자체와 정치권이 연계돼 지나친 지역이기주의가 나타나는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심지어 특정인이나 특정 그룹이 자신의 공적을 쌓는 대상물로 여기는 움직임도 엿볼 수 있어 씁쓸함을 감출 수 없다.

전 세계 170여개국 5000만 태권도인의 정신적 구심점이 될 태권도 성지의 의미를 생각하면 답답한 일이다. 특히 태권도를 21세기 국가전략 상품화하고 세계적인 관광명소를 조성해 관광산업의 발전을 도모한다는 기대효과를 생각하면 더욱 안타깝다.

태권도공원에는 태권도전당, 태권도수련단지, 호국청소년단지, 관광단지, 영상단지, 한방.기공단지 등이 조성될 예정이다. 개요만 보아도 이 사업은 대규모 국책사업임이 분명하다. 국가경제에 미칠 파급효과를 생각하면 그 성패를 좌우할 가장 중요한 요소는 입지 선정이다. 그러므로 그 첫 단추를 잘못 끼우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태권도공원의 경제적 측면을 고려하자면 미국 태권도인구가 가져다줄 관광산업 발전의 측면을 간과할 수 없다. 이준구 미국태권도연맹 총재에 의하면 미국의 태권도 인구는 600만명에 이르며, 가족까지 합치면 4000만명이라고 한다. 연간 100만명의 태권도 관련 인사가 태권도공원과 연계된 관광을 할 것이란 분석도 나오고 있다. 그리고 태권도협회에 따르면 향후 미국인을 비롯한 외국인이 태권도 4단 이상으로 승단하려면 태권도 성지순례 차원에서 한국의 태권도공원에서 심사 과정을 거치도록 할 것이 유력하다.

태권도공원은 12시간 이상의 항공 여행으로 심신이 지쳐 있는 방문객들이 공항 도착 후 1시간 이내에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숙소로 갈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공원 후보지는 사시사철 얼지 않는 공항과 인접해 있어야 하며, 육로뿐 아니라 대형 유람선으로도 접근하기 쉬워야 한다. 숲과 바다가 어우러지고 따뜻한 기후조건을 갖춘 특급호텔이 많은 곳이면 더욱 좋다.

태권도공원은 배후도시가 있고 고적 답사의 관광이 가능하고 전통놀이문화를 즐길 수 있어야 그 존재가치를 드높일 것이다. 외국의 방문객이 이국적인 향기와 민족성을 느낄 수 있는 축제를 즐길 수 있고 위락시설(카지노)과 국제적 명소가 있으면 더욱 선호할 것이다. 그것은 태권도공원 입지 선정은 국익 차원에서 생각해야 하며 결코 지역안배적 차원에서 접근할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태권도공원 조성위원회와 실무위원회도 객관적이고 명확한 평가기준에 따라 본래의 조성 목적에 맞는 후보지를 선정할 수 있도록 객관적 평가기준부터 만들어야 할 것이다. 또 하나 간과할 수 없는 점은 태권도공원 유치전이 지역 간 대립이나 분열을 불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언제부터인가 전체엔 도움이 되지만 자신의 이웃에 조금이라도 피해가 야기되는 기관을 두지 않으려는 이른바 님비(NIMBY.Not In My Back Yard)증후군 때문에 진통을 겪었다. 태권도공원 유치는 이러한 현상에 대비되는 임피(IMFY.In My Front Yard)현상, 즉 나에게만 도움이 되면 전체에는 도움이 되지 않더라도 우선 유치하고 보자는 이기주의가 만연하고 있다. 만약 입지선정을 둘러싼 부작용이 우려된다면 선정 시기를 늦춰서라도 좀 더 객관적인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

김인세 부산대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