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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위있는 죽음' 합법화 확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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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존엄사(尊嚴死)를 인정하는 추세가 확산되고 있다. 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에게 더 이상의 고통없이 죽을 수 있는 권리를 주자는 것이다. 프랑스 하원은 '품위있게 죽을 권리를 인정하는 법안'을 지난달 30일 만장일치에 가까운 찬성으로 통과시켰다. 영국 가정법원도 이날 불치병 환자의 '자살 여행'(자살하기 위해 안락사가 합법화된 나라로 가는 여행)을 허용했다.

◆ 프랑스의 존엄사=하원에서 통과된 존엄사 법안은 안락사를 합법화한 것은 아니다. 단지 가망 없는 환자에게 생명연장용 치료를 거부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한 것이다. 상원 심의를 남겨두고 있으나 이미 정부와 의회 간에 법안 통과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돼 있어 통과는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지금까지 프랑스에서는 죽음을 앞둔 환자에게 치료를 거부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하지 않아 환자의 희망에 따라 치료를 중단한 의사들이 살인죄로 처벌받아 왔다. 새 법안은 환자의 의식 유무에 따른 다양한 생명마감 절차를 규정하는 존엄사 조건을 엄격히 명시하고 있다.

◆ 영국의 자살여행=헤들리 가정법원은 한 불치병 환자에게 내렸던 자살여행 금지 명령을 철회했다. 법원은 판결문을 통해 "자살여행이 환자 자신의 결정이며, 성년이 된 아이들과 남편이 동의했다. 그 결정과 관련된 모든 권리와 책임이 전적으로 당사자에게 있으며, 법원도 그 결정을 좌절시킬 수는 없다. 이후 자살여행을 도운 남편에 대한 처리 여부는 차후 수사기관의 기소 이후 법정이 판단할 문제"라고 결정했다. 환자는 북잉글랜드 지방에 사는 뇌기능장애 중증환자인 중년 여성으로, 남편의 도움을 받아 취리히의 안락사 전문 비영리법인 디그니타스를 찾아갈 계획이었다.

영국에선 자살금지법에 따라 자살을 돕거나 방조하는 행위는 불법이다. 이에 따라 영국인 불치병 환자 22명이 안락사를 허용하는 스위스의 디그니타스를 찾아가 자살한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경찰은 최근 이 같은 자살여행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으나 아직 기소된 사람은 없다.

이번 결정에 대해 안락사를 지지하는 '자발적인 안락사 모임(VES)'의 데보라 아네츠는 "존엄한 죽음에 대한 판결의 분수령이 될 것이다. 이제 법을 바꿔야 할 차례"라고 주장했다.

◆ 다른 나라는=미국 오리건주는 1994년 주민투표를 통해 의학적 도움에 의한 자살을 허용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세계에서 최초로 안락사를 합법화한 나라는 네덜란드다. 덴마크는 완치 불가능한 환자가 스스로 치료를 거부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스웨덴 의사들은 극단적인 경우 환자의 산소호흡기를 제거할 수 있도록 허용되고 있다.

런던.파리=오병상.박경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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