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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벤처다] 下. 벤처 스타들의 제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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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 벤처기업인들이 벤처기업협회 사무실에 모여 업계 진흥방안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왼쪽부터 조현정.전하진.장흥순.변대규.김태희 대표.임현동 기자

벤처의 역할에 대한 재조명 움직임이 일면서 주요 벤처기업 경영자들의 행동 반경도 넓어졌다. 벤처진흥책을 다듬고 있는 정부나 당에서 이들을 찾는 일이 잦아졌다. 실제로 정책협의나 간담회 등에 참석하기 위해 정부 과천청사와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을 드나들 일이 적지 않다. 지난달 23일 서울 테헤란로 벤처기업협회 사무실에 이름있는 벤처인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벤처의 실패사례를 거울삼아 다시 벤처를 일으키는 방안이 논의됐다.

▶장흥순 벤처기업협회장(터보테크 대표)=경제위기를 타개할 성장동력을 벤처에서 찾아야 한다. 부품.소재 산업의 국제 경쟁력이 떨어져 대일 무역적자가 쌓이고 있다. 또 중국과의 기술격차도 3~5년 정도로 좁혀졌다. 대량 실업, 이공계 기피, 내수 부진을 해결하려면 벤처형 뉴비즈니스가 필요하다. 벤처는 휴맥스.엔씨소프트.다음커뮤니케이션.코아로직 같은 많은 성공모델을 만들어냈다. 물론 성장통도 있었다. 벤처기업인 중 낯뜨거운 행동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먼저 실추된 벤처의 이미지를 회복해야 한다.

▶변대규 휴맥스 대표=대기업들이 투자를 꺼린다. 산업성장기에는 대기업과 정부가 투자 리스크를 떠안았다. 외환위기 이후 정부는 한발 물러섰다. 대기업도 외국인 주주의 입김이 커지면서 투자를 맘대로 못한다. 리스크를 감수하려는 벤처기업가가 투자해야 할 때다. 문제는 벤처캐피털이나 코스닥 시장 같은 자금줄이 얼어붙었다는 것이다.

▶전하진 본웨이브 대표=벤처는 95%의 실패를 딛고 5%만 살아남아도 성공이다. 기존의 틀을 깨고 창조하는 일이어서 실패는 다반사다. 그래서 실패를 자산화해 부가가치로 전환시키는 선순환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김태희 씨앤에스 대표=머니게임에 혹하거나 거품에 도취된 '무늬만 벤처'도 적잖았다. 하지만 정말 잘해 보려다 안 된 곳이 더 많았다. 기술만 믿고 경영관리를 게을리하다가 망한 엔지니어 창업사례는 연구할 가치도 있고 반면교사가 된다.

▶조현정 비트컴퓨터 대표=벤처가 우리 산업에 기여한 부분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휴대전화 하면 삼성.LG를 떠올리지만 사실 이 분야 초창기에 어필텔레콤.세원텔레콤 같은 벤처들이 이들과 경쟁도 하고 납품도 했다. 벤처 부품 없이 폰카(카메라폰)를 생각하기 힘들다.

▶장흥순=벤처의 영욕을 통해 업계는 물론 투자자.정부.언론 할 것 없이 값진 실패의 교훈을 얻었다. 벤처가 다시 자랄 토양을 갖추자. 창업 환경이 든든해야 한다. 자금 지원이나 인위적인 부양은 오히려 독이 된다.

▶전하진=대기업보다 벤처가 나은 것은 스피드다. 홈네트워크.모바일 같은 분야는 변화가 빨라 경영 의사결정이 신속해야 한다. 신기루를 좇는 것 같지만 대박이 터지는 일은 벤처에선 적지 않다. 아바타는 이제 1조원대 규모의 시장이 됐다. 하지만 아이디어 단계 때는 '장난'이라는 핀잔을 들었다.

▶변대규=벤처 거품 붕괴 후 4년이 지나도록 패인 분석과 반성이 부족하다. 가장 큰 과오는 코스닥이었다고 본다. 시장을 꼼꼼하게 만들지 못해 엉뚱한 사람들이 몰려들어 혼란스러워졌다. 앞으로 코스닥 활성화 대책이 나오면 '벤처꾼'들이 또 몰려들 수 있다. 이번에야 말로 감독당국이 잘해야 하고 벤처업계도 선의의 투자자 피해를 막기 위한 자정노력을 해야 한다. 협회가 하루빨리 실패백서를 펴내야 한다.

▶전하진=중소기업과 대기업을 너무 대립 관계로 보면 안 된다. 둘은 상생 관계다. 대기업의 벤처 인수합병(M&A)도 그런 시각 아래서 활발해질 수 있다. 벤처사업가의 목표가 대기업일 수는 없다. 휴맥스처럼 글로벌 기업화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벤처가 경영을 더 잘할 수 있는 곳으로 팔리는 것도 장려할 만한 일이다.

▶장흥순=벤처기업가도 많이 성숙했다. 기술만 들고 펀딩(투자 유치)하겠다는 순진한 사람은 이제 많지 않다. 네트워크의 중요성도 절감했다. 요즘 벤처에 가보면 은행이나 대기업 출신들이 많은데 바람직한 현상이다.

정리=홍승일.박혜민 기자
사진=임현동 기자 <hyundong3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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