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대박인가 쪽박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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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밝아오는 새해를 누구보다 벅찬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선거 브로커들이다. 이들 선거꾼에게 2002년은 사상 유례없는 대목이다.

우선 지방선거가 있다. 6월 13일로 예정된 제3회 전국 지방동시선거에선 시.도지사 16명, 시장.군수.구청장 2백32명, 광역의원 6백90명, 기초의원 3천4백90명을 뽑는다.

대략 3대1의 경쟁률이면 출마자만 1만3천명이 넘는다. 후보 한명이 1억원만 써도 1조3천억원의 큰 장이 선다. 어디 1억원씩만 쓰겠는가. 브로커들이 '대박'의 꿈에 잠 못이룰 만도 하다.

*** 지방선거만 1조이상 풀려

그러나 이는 예고편일 뿐이다. 본게임은 연말에 있다. 16대 대통령 선거다. 12월 19일이 투표일이다. 이번 대선은 그야말로 죽기살기식 혈투가 될 전망이다.

여당이나 야당이나 질 수 없는 선거다. 그동안 정권 뺏긴 설움을 맛본 한나라당 중진의원들은 "대선에서 지면 정치 그만둘 것"이라고 말한다. 야당 된 뒤 본인은 물론 친인척과 지구당 간부까지 샅샅이 세무조사당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더는 야당 못한다"는 이야기다.

민주당도 절박하다. "이회창이 집권하면 호남 사람은 다 이민가야 한다"는 말이 현지에서 공공연히 나돈다는 게 민주당 의원의 말이다.

대선은 정치인들만의 일이 아니다. 정권의 향배에 따라 공무원.국영기업체 간부는 물론 일반 기업의 인사까지 좌우되는 게 현실이다. 그래서 대선은 '거의 전쟁 비슷하게 치러질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돈도 엄청나게 풀릴 게 분명하다. 브로커들은 그 막대한 자금과 이겼을 경우의 논공행상, 자리와 이권에의 황홀한 기대로 가슴 두근댈 것이다.

뿐만인가. 두개의 전국선거보다 규모는 작아도 실속은 짭짤한 장이 사이사이 선다. 민주당이 2월부터 대통령후보와 당지도부 선출을 위한 전국순회 경선을 시작할 태세다. 한나라당도 조기 전당대회를 검토 중이다. 여기 들어갈 돈도 만만치 않다.

또 있다.내년 8월 8일에는 국회의원 재.보궐선거를 해야 한다. 법원의 판결대로라면 서울 종로, 인천 서-강화을, 경기 하남이 가능성이 크다. 중부권이라 대선 전초전이란 의미가 부여될 전망이다. 역시 과열이 불보듯 뻔하다. 여기에 5월 말엔 월드컵, 9월 말엔 부산아시안게임이 개막된다. 1년 내내 선거판.잔치판이다.

물론 브로커들이 대박이 터지건 쪽박을 차건 우리야 관심밖이다. 문제는 나라꼴이 어찌될까다. 흥청망청하다가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같은 험한 꼴을 또 당하는 게 아닌가 하는 근심.걱정이 늘고 있다.

기우(杞憂)만은 아니다. 1백50조원의 공적자금 가운데 75%가 회수가 불투명한 실정이다. 2003년부터 해마다 20조원 이상을 갚아야 할 형편이다.장기채를 발행해도 이자부담이 연 5조원 이상이다. 엔화 하락으로 인해 수출이 큰 타격을 받을 것이란 전망도 있다. 허리띠를 졸라매도 부족할 형편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권의 정책기능 절반은 한해 동안 마비된다. 선거 때문에 핑크빛 선심 공약을 쏟아내야 하는 반면 인기없고 표 떨어지는 정책은 엄두도 못낸다. 노조를 비롯한 각종 이익단체의 집단이기주의에도 속수무책으로 휘둘릴 수밖에 없다.

*** 집단이기주의 경계해야

무엇보다 반드시 선거를 이겨야 하고, 돈으로 지역감정 자극으로 표를 살 수 있다고 믿는 후보와 정당들이 여전하다. 그들에게 손벌리는 유권자도 마찬가지다.

이들을 막을 방법이 마땅치 않은 게 정말 문제다. 공직자들은 눈치보기.줄서기에 열심이고, 정치적 중립 문제로 야당의 신랄한 추궁을 받는 검찰.경찰에 기대하기도 어렵다. 힘없는 선관위가 돈선거.관권선거.죽기살기식 전쟁 같은 선거를 막을 것 같지도 않다. 시민단체의 공신력도 전과 다르다. 그래서 내년은 위기의 해, 거덜나는 해가 될까 겁난다. 그 2002년이 이제 열흘 남았다.

김교준 <정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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