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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본격적 책 읽기 나선 '3045세대'잡아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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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1면

"한국의 연극 관람객들은 얼굴 표정이 없다." 연극평론가 김방옥이 오래 전 던졌던 말에는 곤혹스러움이 묻어난다. 연극 관람층이 정말 어떤 무대를 원하는지 그 취향을 도무지 정확하게 판독해낼 수 없다는 자탄이다.

따라서 간혹 된다 하는 소문과 함께 사람들이 '우'하고 몰리는 경우는 '친구 따라 장터 가는' 쏠림의 구조다. 문화 수요층의 빈곤함을 반영하는 이런 구조는 문화의 전 장르에 적용된다. 출판시장도 예외가 없다.

출판시장을 움직이는 수요층 역시 '얼굴표정'이 없고,따라서 핵심 계층은 보통 '20대 초중반 직장여성들'로 상정됐다. 지식산업을 고졸여성들이 쥐고 있었던 셈이다. 가벼운 문학물을 선호하는 이들에게 영합할 수밖에 없었던 구조는 그 때문이다. '출판은 도박'이라는 말은 업계상식으로 통했다.

한 해를 결산하는 세밑에 이런 기형적 수급(需給)구조가 바뀔 징후가 보인다는 점이 매우 고무적이다. 30대와 40대 초중반 연령층이 20대 초중반 여성들을 제치고 출판시장의 핵심 수요층으로 떠오른 것이다. 물론 아직은 인문.사회과학서를 중심으로 한 현상이다.

이를테면 매출액(올해 2백억원 내외)과 대표성에서 으뜸인 단행본 출판사인 민음사의 경우 매출액의 80% 이상을 30대 전후 연령층이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점은 민음사를 비롯해 비룡소.황금가지.사이언스북스 등 4개 자회사에도 두루 나타난다. 그림책을 펴내는 비룡소의 경우도 아이들 손을 잡고 서점에 나타난 30대 부모들이 주고객이다.

이런 구조는 타 출판사에서도 유사하다. 정가 3만원대의 『교양』을 펴낸 들녘의 경우가 그렇다.

당초 2천부 내외가 판매될 것이라던 판단을 뒤엎은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 책을 움직인 것은 인문사회과학서에 대한 균형잡힌 선호 취향을 가진 30대 독자층으로 확인됐다. 물론 이들은 가처분 소득이 상대적으로 많다.

또 『서양과 동양이 127일간 e-mail을 주고받다』로 주목받은 신생사 휴머니스트도 30대 전후를 주력 독자층으로 상정하고 출범했고, 실제 반응도 맞아떨어지고 있다. 때문에 출판계에서는 전체 출판시장은 예년에 비해 커지고 있고, 무엇보다 매출구조가 예년과 비할 수 없이 좋아졌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에 따라 편집자들은 종래 20대 여성들을 잡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 3045세대(30세 이상~ 40대 중반 이하)라는 수요층에 어필할 수 있는 양서 출판의 안정적 생산구조가 형성된 것이다.

20대 연령층이 종이책보다는 게임이나 영상매체 등에 매니어적인 관심을 가진 세대라면, 30대 이상은 보다 넓은 폭의 관심을 가졌기 때문이다. 이런 소망스러운 구조의 등장은 50대 이상 연령층이 출판시장의 주요 고객층인 일본에 비해 훨씬 젊은 구조라는 점에서 환영할 만하다.

이들 계층은 1950년대 전후(戰後)세대들이 '신서(新書) 전쟁', 이후 60년대 '문고전쟁'이라 부르는 공격적 지식의 생산 속에서 형성된 세대들이다. 오늘날 일본의 주요 출판사의 편집장들 역시 대부분 60년대 '전공투 세대들'로 구성됐다.

그들의 선배가 만든 신서와 문고를 읽고 성장해 70년대 이후 편집자로 성장한 것이다. 생산과 수요층이 같이 성장하는 것이다.

어쨌거나 '3045세대'의 출현은 출판시장의 첫 안정적 계층의 등장이다. 출판물 수요층의 신대륙이라는 판단은 그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들과 한국 출판산업이 어떻게 주고받으며 함께 성장할 것인가 하는 과제를 안겨주고 있는 셈이다.

조우석 <출판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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