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일고 1,500명 이웃사랑 한마음 화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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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밥통의 진지가 다 식었네…. 아이고, 형광등도 갈아드려야겠네."

서울 관악구 신림13동 가파른 언덕길에 있는 정부남(83)할머니의 5평 남짓한 오두막은 20일 뜻하지 않은 손님들로 북적거렸다.

남편과 일찍 사별, 자녀도 없이 정부 지원금을 받아 근근이 생활하는 정할머니집에 서울 금천구 문일고 김태식(17.1년)군 등 학생 네명과 학부모 함종란(41.여.서울 금천구 독산4동)씨가 찾아온 것.

달동네로 유명한 난곡에 살다 재개발로 집이 철거되는 바람에 이달 초 이곳으로 이사온 정할머니를 위해 이들은 성금을 모아 마련한 쌀.과일 등 생필품을 선물했다. 배군이 할머니에게 안마를 해드리는 동안 김순호(17.1년)군은 맨발로 화장실을 청소했고, 학부모 함씨는 부엌 정리를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미안하다며 극구 학생들을 말리던 정할머니는 "공부하기도 바쁠텐데 찾아와 주니 손자가 생긴 것 같아 너무 기쁘다"고 말했다. 이들뿐 아니라 문일고 1,2학년 학생 1천5백여명과 교사 1백20여명은 네명씩 조를 이뤄 이날 오후 1~5시 금천구와 관악구 신림동 일대 홀로 사는 노인, 장애인 등 4백10가구를 방문해 봉사활동을 펼쳤다. 학부모들도 조마다 한명씩 동행했다.

금천구 독산2동을 찾은 김규석(17.1년)군 등은 영하의 날씨에도 아랑곳 않고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를 업어 병원까지 모셔다 드렸다. 시흥본동 함계순(77)할머니와 오후를 보낸 장영민(18.2년)군 등은 "할머니가 좋아하시는 곶감과 바나나를 갖고 다시 오기로 약속했다"고 말했다.

김익환(金益煥)교감은 "어려움을 모르고 자라는 요즘 학생들에게 남을 돕는 마음을 일깨워주기 위해 학교 전체가 봉사에 나서게 됐다"며 "학생들 사이에 자발적인 봉사활동이 확산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성탁 기자

사진=장문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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