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도박산업도 투명경영이 통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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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지난 14일 강원도 정선군 고한리 1천1백50m 고지.

내국인 전용 카지노인 강원랜드에서 김광식(60)사장과 원기준(41)목사가 만났다. 金사장은 강원랜드의 최고 경영자, 元목사는 이 회사를 탄생시킨 지역주민 대표다.

金사장은 元목사를 가리켜 "사장실을 자기집 드나들 듯하며 강원랜드가 번 돈을 지역경제에 쓰도록 채근하고 감시하는 분"이라고 소개했다.

두 사람은 이 때문에 만나기만 하면 강원랜드를 놓고 논쟁을 벌인다.

元목사는 이날도 "지역주민을 한 사람이라도 더 써달라"고 주문했고, 金사장은 "그렇게 하면 기업의 효율성이 떨어져 곤란하다"고 맞섰다.

두 사람은 사실상 이 회사를 공동경영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도 이구동성으로 "구멍가게 경험조차 없다"고 말하는 카지노 경영의 문외한들이다.

이들이 이끈 강원랜드의 올해 첫 성적표(추산)는 매출액 4천억원, 순익 2천억원이다. 폐광지역 산골짜기 땅이 하루 평균 13억원의 현금을 쏟아내는 황금 곳간으로 바뀐 것이다. 이를 반영해 강원랜드는 지난 10월 코스닥에 등록되자 성장주로 인정받아 주식값이 주당 12만원대로 뛰었다.

◇ 전직 공무원과 목사가 경영인=金사장은 1965년 조선대 자원공학과를 졸업한 뒤 상공부.동자부.석탄산업합리화사업단 등에서 30년간 잔뼈가 굵은 석탄전문 공무원이다.

98년 설립된 강원랜드가 1년도 안돼 임원 스캔들과 주민과의 갈등 때문에 임원을 전원 해임하는 진통을 겪을 때 이를 수습하기 위한 사장으로 공채됐다.

金사장은 사장으로 임명되기 직전 뇌물사건에 연루돼 검찰조사도 받았다. 그러나 당시 돈을 받자 은행에 가 즉각 되돌려준 입금표가 확인돼 되레 청렴성을 검증받기도 했다.

元목사는 서울에서 교회음악 전문 전도사로 일하다 85년부터 탄광촌에 헌신한 노동운동가다. 그는 동원탄좌 파업 배후자로 지목돼 89년부터 91년까지 2년 동안 옥살이를 했다.

강원랜드가 전문가 2명으로 구성된 도박중독센터를 운영하고, 자발적인 출입제한제도(현재 2백32명)를 시행하는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 도박산업을 한다는 곱지 않은 시선이 여전히 부담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 도박산업에 투명경영을 실험=두 사람은 말 많고 험악하다는 도박산업을 1년새 정상궤도에 올려 놓은 비결을 "최고 경영자가 백지상태라서 가능했다"고 말했다. 처음엔 아무 것도 몰라 겁도 났다.

이들은 "서울에서 네시간 거리인 폐광촌에 누가 올까"하는 걱정에 잠이 오지 않았다. '망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미국 카지노업체에 경영을 위탁하는 방안도 추진했으나 대가가 비싸서 포기했다.

다행히 독점사업인 데다 예상 외로 인파가 몰려 걱정은 금세 사라졌다. '앉아서 돈버는 장사'라는 지적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두 사람은 투명경영 노력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종업원 호주머니는 아예 꿰매놨고, 게임기를 전산화해 돈이 은행으로 자동 입금되도록 했다. 게임장 천장엔 감시카메라를 3백대나 설치했다.

金사장은 "회사 돈을 빼돌리려면 직원 20여명이 작당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元목사는 자칭 NGO(시민단체)라고 했다.

도박산업에서 풍기는 비리.정치자금 연루 이미지를 떼어 놓는 임무다.

元목사는 최근 강원랜드와 권력핵심층과의 비리 연루설에 대해 "최근 국정원과 검찰측에서 내사까지 한 것은 사실"이라며 "그러나 대부분 사정 모르는 풍문이었다"고 말했다.

김시래.김남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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