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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발표’ 이후 중국의 계산법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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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호 35면

전 세계의 이목이 중국에 집중되고 있다. 천안함 격침 이후 한·미·일은 물론 국제사회 전체가 북한의 만행을 규탄하고 강력한 대북 제재를 요구하는 상황에서 중국은 아직까지 이렇다 할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중국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중국은 현재 상당히 곤혹스러운 입장에 처해 있는 것이 분명하다. 중국은 한반도 비핵화를 원한다. 이 점에선 한국이나 미·일 등과 똑같은 전략적 목표를 갖고 있다. 북한이 두 차례 핵실험을 강행하고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할 때마다 중국은 내심 심히 불쾌해했고 이런 심리를 북한에 직간접으로 전했다. 이 과정에서 일부 분석가들은 중국의 대북 전략이 근본적으로 변하고 있다는 성급한 진단을 내놓았다.

대부분의 중국 전문가들에 의하면 중국은 분명 북한의 현 체제에 대해 근본적인 불만을 갖고 있다. 개혁·개방을 거부하는 폐쇄체제는 물론 거듭된 왕조식 권력세습에 대해서도 비판적이다. 따라서 중국 지도층 가운데 한국전쟁 당시의 ‘조·중 동맹’을 기억하는 군부 일각의 보수 강경파를 제외하고는 북한체제를 적극 옹호하는 인사는 거의 없다. 북·중 관계를 ‘동맹’으로 규정하기를 거부하는 중국의 공식 입장이 이런 심리를 대변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중국의 대(對)북한관은 한·미·일의 그것과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인다. 그래서 중국을 잘만 설득하면 (특히 미국이) 중국도 대북 제재에 동참하고 북한체제의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할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중국과 다른 역내 국가들의 대북한관 간의 유사성은 여기에서 그친다.
우선 중국은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는 것을 원하지만 그 방법론에 있어서는 여타 국가들과 현저하게 다른 관점을 갖고 있다. 한·미·일은 국제사회가 모든 수단을 동원해 북한을 제재한다면 김정일 정권이 그 압력을 못 이겨 양보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반면 중국은 북한이 여간해서는 항복도 붕괴도 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중국의 북한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북한체제가 견고하며 세습 과정에서도 이렇다 할 정치적인 불안이나 혼란이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내다본다.

무엇보다도 중국은 북한체제의 위기설 운운하면서 중국에 대북 제재 동참을 종용하는 한국과 미국의 입장이 북·중 사이를 이간질시키는 계략으로 파악하고 있다. 중국에 있어 북한과 북·중 접경지역은 어떤 경우에도 양보할 수 없는 전략적 요충지다. 따라서 아무리 김정일 정권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북·중 관계를 포기할 수 없다.

중국의 입장에서 본다면 3대 권력세습 과정에 들어간 북한은 더욱 조심스럽게 관리해야 할 대상이다. 과거 김일성-김정일 세습 당시 중국이 대내 개혁에 몰두하면서 북한을 소홀히 하다 북·중 관계가 냉각됐던 경험을 갖고 있기에 더더욱 조심스럽다. 정권교체기를 맞이한 북한을 또 소홀히 했다가는 차기 권력자가 중국의 품을 완전히 떠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국 지도부는 어떻게 해서든지 북한의 차기 권력자가 절대적인 친중 기조를 유지하게 해야 한다. 지난해 10월 원자바오 총리의 방북, 그리고 올해 5월 초 김정일의 방중은 모두 이런 계산과 배려에서 비롯됐다.

그렇다면 중국은 북한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북한의 제2차 핵실험 이후처럼 유엔 안보리 등 국제기구를 통한 대북 제재에는 일부 동참할 수 있을망정 북한체제를 흔들 만한 압력을 행사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한국 쪽에선 5월 초 이명박 대통령의 방중 직후 김정일의 방중을 수용한 것을 섭섭해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의 입장에선 경제적으로, 외교적으로 고립돼 체제 위기에 몰린 북한을 그냥 놔둘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중국이 북한에 대해 갖고 있는 절대적인 전략적 이해관계와 지분을 망각 또는 무시하면서 대북 제재를 종용하고 나선 한·미·일의 태도에 은근히 화도 났을 것이다.

중국은 이제 미국과 필적할 만한 강대국으로 부상하고 있다. 세계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하기 시작한 중국은 국제사회에서의 지분을 더욱 강한 목소리로 챙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른 나라들이 중국의 핵심적인 ‘이해관계’를 존중해 줄 것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따라서 중국이 한반도에서 자국의 이해관계를 더욱 적극적으로, 더욱 노골적으로 챙길 것은 자명한 일이다.

한국의 세련된 대중 외교는 중국의 근본적인 전략적 이해관계와 북한에 대한 ‘지분’을 충분히 감안할 때 가능하다. 그래야만 한반도의 비핵화와 번영을 기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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