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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일’ 실질 경제규모 미국 앞섰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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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호 24면

한국·중국(홍콩 포함)·일본 등 동아시아 세 나라의 실질 경제규모가 처음으로 미국을 넘어섰다. 상품 구매력을 감안한 세 나라의 국내총생산(GDP) 합계를 기준으로 한 것이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의 ‘2010년 세계경쟁력 연감’을 중앙SUNDAY가 분석한 결과다. 2008년 미국발 세계 금융위기와 최근 남유럽 재정위기를 겪으면서 세계 경제의 축이 동아시아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풀이된다.

스위스 IMD의 세계경쟁력 연감 분석

IMD에 따르면 지난해 명목 GDP 순위는 미국(14조2563억 달러)·일본(5조755억 달러)·중국(4조9100억 달러)의 순으로 세계 1~3위를 차지했다. 한국(8305억 달러)은 세계 15위였다. 2008년과 비교해 네 나라 모두 순위 변화는 없었다. IMD는 구매력 지수(PPP)로 환산한 나라별 GDP도 조사한다. 나라마다 물가와 환율이 다른 것을 감안해 실질적으로 상품을 구매할 수 있는 능력을 따진 것이다. 예컨대 같은 1달러라도 미국에서 쓰는 것과 중국에서 쓰는 것은 값어치가 다르기 때문이다.

지난해 구매력 기준 GDP로 중국(8조5908억 달러)은 미국(14조2353억 달러)의 60% 수준까지 치고 올라왔다. 여기에 한국(1조3470억 달러)·일본(4조1391억 달러)·홍콩(2982억 달러)을 포함한 동아시아 3개국으로 보면 미국보다 많았다. 이는 IMD가 국가경쟁력 보고서를 내기 시작한 1989년 이후 처음이다.

중국, 조만간 미국도 추월할 기세
중국은 지난해 세계경제 침체 속에서도 8.7% 성장했고 올해도 8% 수준의 고성장이 예상된다. 중국은 올해를 기점으로 일본을 제치고 ‘세계 2위의 경제대국(명목 GDP 기준)’으로 올라설 것이 확실하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 산하 연구소 EIU는 2007년 보고서에서 “중국은 2014년 경제규모에서 일본을 앞서고, 2017년이면 PPP 기준으로 미국을 능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중국은 일본을 추월하는 시점을 EIU의 전망보다 4년이나 단축했다. 이런 추세라면 중국이 구매력 기준으로 미국을 제치고 세계 1위로 떠오를 시점도 머지않아 보인다.

IMD에 따르면 중국의 국가경쟁력은 지난해 20위에서 올해 18위로 두 계단 올랐다. 중국의 힘은 풍부한 노동력(1위)과 안정·효율성이 높은 제도적 여건(2위)을 기반으로 한 활발한 수출(1위)과 외국인 투자유치(2위)에서 나온다. 세계 최대의 외환보유액(2조4000억 달러)과 낮은 국가부채 비율(2위, GDP 대비 2.72%)도 든든한 배경이다. 약점이라면 사회 인프라가 부족한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공해(58위) 문제를 안고 있는 등 보건·환경(54위) 분야의 경쟁력이 매우 취약했다. GDP의 3%에 불과한 교육비 투자(54위) 등 전반적인 교육(46위) 경쟁력도 시급한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한국 1인당 근로시간 세계 2위
한국 경제는 지난해 조금(0.2%)이나마 플러스 성장하며 국가경쟁력 순위(23위)를 4계단 높였다. 올해 처음으로 일본(27위)도 제쳤다. 부문별로는 경제성과(지난해 45위→올해 21위)에서 순위가 크게 상승했다.

그러나 축하의 샴페인을 터트리기엔 아직 이르다. 한국의 실력이 크게 향상됐다기보다 다른 나라가 워낙 부진해 어부지리를 봤기 때문이다. 예컨대 수출 증가율은 마이너스 13.86%였지만 조사 대상 58개국 중 다섯 번째로 좋았다. 1인당 GDP 증가율도 마이너스 0.09%로 저조했지만 세계 8위였다. GDP 대비 2.07%의 적자를 기록한 정부 재정도 세계 13위로 비교적 좋은 평가를 받았다. 공부하는 학생으로 치자면 절대평가로 따진 시험점수는 떨어졌지만 옆자리 학생들이 시험을 망치는 바람에 등수는 올라간 셈이다.

물가(41위)·교육(35위)·노동시장(35위)과 사회적 여건(49위) 등 한국 경제의 고질적인 약점으로 꼽히는 항목은 여전히 부진했다. 교육 경쟁력을 갉아먹는 가장 큰 원인은 교사 1인당 학생수가 지나치게 많은 것이었다. 초등학교의 경우 25.59명, 중등학교는 18.06명으로 모두 세계 최하위권(51위)이었다. IMD가 보기에 한국 학교의 학생수 과밀은 중국(44위)보다도 심각했다. 노동시장 경쟁력에선 노사관계(56위)가 가장 큰 문제였다. 근로자 1인당 연간 노동시간(2312시간)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았다. 근로시간이 길면 국가경쟁력을 높이는 요인이 되긴 하지만 삶의 질이란 관점에선 부정적이다.

‘한국은 정보기술(IT) 강국’이란 구호도 IMD가 보기엔 문제투성이였다. 인터넷 속도(44위)는 답답할 정도로 느렸고, 이동통신 요금(31위)은 상대적으로 비쌌다. 자격을 갖춘 엔지니어(47위)는 부족했고, 기업 간 기술협력(39위)도 원활하지 않았다.
일본은 지난해 마이너스 성장(-5.2%)을 기록하며 국가경쟁력 순위에서 10계단 추락한 27위에 머물렀다. 그럼에도 제조업 수출 경쟁력 등을 앞세운 일본의 저력은 만만치 않다. 일본은 올 1분기에 1.2%(전 분기 대비) 성장하며 4분기 연속 성장세를 이어갔다.

IMD가 평가한 일본의 과학기술 인프라는 미국에 이어 세계 2위다. 일본은 수출(4위)로 벌어들인 돈으로 연구개발(R&D)에 막대한 투자(2위)를 퍼붓고 있다. 특허 보유건수에선 세계 1위다. 평균 수명이 세계에서 제일 긴 것(83세)을 비롯해 보건·환경(11위)의 경쟁력이 높은 편이다. 기업들의 친환경 경영(1위)과 녹색기술(2위)에서도 세계적인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반면 생활비(56위)가 많이 들고, 인구 고령화(55위)가 심각한 것은 일본의 대표적 약점으로 꼽혔다. 일본 주요 도시의 생활물가 수준은 미국에서 물가가 비싸기로 유명한 뉴욕에 비해서도 30%나 더 비싼 것으로 조사됐다. 최고 40%에 달하는 법인세율(58위)은 기업 활동의 의욕을 꺾고 외국 기업의 진출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지적됐다. 외국인 관광객 유치(GDP 대비 관광수입)는 조사 대상 58개국 중 최하위(58위)였다. IMD는 일본의 국가부채(57위)가 지나치게 많아 2084년까지 빚더미에 허덕일 것으로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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