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에 또 악재지만 이젠 성역 파헤칠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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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또 다시 고검장급 간부가 비리에 연루됐다는 말이냐."

본지가 신광옥(辛光玉)법무부차관의 1억원 수뢰혐의를 보도한 11일 아침 서울과 지방의 많은 검사들은 놀라움과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들은 "만약 辛차관이 공직사회 사정을 담당하는 대통령의 핵심참모인 민정수석 시절 진승현(陳承鉉)씨의 돈을 받은 것이 사실이라면 현 정부는 물론 검찰에도 엄청난 부담이 될 것"이라고 수사진척 상황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그러나 대검의 한 간부는 "탄핵 고비를 간신히 넘긴 신승남(愼承男)총장이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는 시점에서 辛차관 사건은 또 하나의 악재지만 원칙대로 수사하고 처리해 검찰 수사에 성역이 없음을 보여줄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말했다.

서울지검의 한 소장검사는 "지난해 陳씨측이 국정원은 물론 검찰 출신 고위직 인사에게도 접근했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당시 수사팀이 이를 파헤치지 않았다"며 "이미 국정원 관계자들도 사법처리됐으니 당시 소문이 전혀 낭설은 아니었던 셈"이라고 말했다.

한편 법무부와 대검 수뇌부들은 辛차관의 1억원 수뢰혐의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느라 하루 종일 분주한 움직임이었다.

공식적으로는 서울지검으로부터 辛차관의 비리혐의에 관한 보고를 받지 못했다고 설명했던 愼검찰총장은 이날 아침 출근길에 본지 기자에게 "그게 1면 톱이데"라고 말했다.

서울지검 고위관계자도 이날 아침 "현재 陳씨로부터 辛차관에게 돈을 주었다는 진술은 나오지 않았다"며 본지 보도 내용을 부인하면서도 "두 사람이 지난해 함께 식사했다는 첩보도 있어 사실여부를 확인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검찰 관계자들은 "최근 서울지검 특수1부가 陳씨에 대한 조사를 계속한 점으로 미뤄, 수사팀이 辛차관 비리혐의를 포착하고도 대통령에게 정식 보고한 후 이 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공식적으로는 부인하는 것일 수 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대검의 한 관계자는 "辛차관의 뇌물수수 부분에 대해 김대웅(金大雄)서울지검장이 愼총장에게 보고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총장에게 보고했다는 점에서 辛차관의 혐의가 상당히 신빙성이 있는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유럽순방을 끝내고 귀국하는 12일에 맞춰 辛차관의 사법처리 일정을 대통령에게 정식 보고하고 수사에 착수하려다 언론에 보도돼 잠시 주춤하고 있는 것일 뿐 辛차관의 사법처리는 불가피하지 않겠느냐는 것이 이 관계자의 말이다.

이와 관련, 金지검장도 "언론에서 너무 앞질러 가는 바람에 수사가 지장을 받고 있다"며 "열심히 하고 있으니 기다려 달라"고 말하는 등 강력한 수사 의지를 내비치기도 했다.

정용환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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