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창 총재 '비주류와 경선' 고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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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는 11일 박근혜 부총재가 당 대선후보 경선 출마를 선언했다는 보고를 받고 "좋은 일"이라고 짤막하게 대꾸했다고 김무성 총재비서실장이 전했다. 그동안 "우리 당에는 훌륭한 대통령감이 많다. (1997년에)대선후보 경선의 전통을 세운 게 우리이므로 그 전통을 지킬 것"이라고 말해온 李총재다.

李총재 측근들 중에선 "오히려 잘됐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총재가 단독으로 대선후보로 추대되는 것보다 경쟁을 거쳐 후보가 되는 게 모양새가 좋다"는 것이다.

하지만 경계와 우려의 목소리도 크다. 총재특보인 한 의원은 "朴부총재가 향후 정치권에 큰 변수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朴부총재의 경선 출마 선언이 당 내에선 비주류의 활동공간을 넓히는 요인이 될 것이며,당 밖에선 정계개편과 한나라당 흔들기의 단서를 제공하는 쪽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그는 관측했다.

한 당직자는 비주류가 연대해 李총재의 당 운영을 "1인지배 체제"라고 집중 공격하는 등 李총재 이미지에 상처를 줄 가능성을 우려했다.

게다가 민주당 대선주자를 상대로 한 朴부총재의 경쟁력이 李총재에 비해 크게 떨어지지 않는 것으로 나타날 경우 향후 영남, 특히 TK(대구.경북)기류에 변화가 생길 수도 있다는 점이 李총재에게는 부담이다. "만일 민주당 주자에 대한 상대적 여론조사에서 朴부총재가 李총재보다 앞서는 일이 발생하면 당원들이 큰 충격을 받을 것"이라고 이 당직자는 말했다.

때문에 李총재측도 전략수립에 고민하는 모습이다. 李총재가 이날 국가혁신위 정치발전분과 중간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내년 대선 이후 대통령직과 당총재직을 분리하는 방안을 수용하겠다고 밝힌 것도 비주류의 공세를 차단하기 위해서다. 비주류는 그동안 당권.대권 분리를 줄기차게 요구하면서 李총재를 압박해 왔다.

李총재는 또 혁신위가 '제왕적 대통령제'의 견제수단으로 제시한 인사청문회 확대, 국회의장의 당적 이탈도 "좋은 아이디어"라고 평가했다. 당내 민주화와 정치개혁에서 주도권을 잡겠다는 의도라는 분석이다.

李총재는 불공정 경선 시비를 차단하기 위해 적절한 시점에 당직을 개편, 당을 경선관리체제로 전환하는 것도 검토 중이다.

이상일 기자

사진=김춘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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