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지금 공자 되살리기 열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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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중국 광둥(廣東)성 광저우(廣州)에 있는 우이(五一)초등학교 5학년 1반. 어문(語文)교사 천민(陳敏)이 "자왈(子曰)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悅呼)"를 선창하자 학생들이 일제히 큰 소리로 따라 읽는다. "배우고 때로 익히면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라고 2천5백년전 공자(그림)가 했던 말이 좁은 교실을 쩌렁쩌렁 울린다.

중국 공산당이 타도의 대상으로 삼았던 봉건왕조시대의 서당풍경이 21세기 중국의 초등학교 교실에서 재연되고 있다. 우이 초등학교는 지난 9월 신학기부터 전 학년에 걸쳐 독경(讀經)과목을 신설했다.

학생들은 머리를 흔들며 『논어』와 『대학』에 나오는 성현의 말씀을 읊조린다. 이해를 못해도 우선 암기하게 하는 이 교습법은 '독서백편 의자현(讀書百遍 義自見.많이 읽으면 절로 뜻을 알게 된다)'이란 옛 방법에 따른 것이다. 陳교사는 "기억력 증진 뿐만 아니라 사람의 됨됨이를 가르치기 위해서"라고 독경과목을 신설한 이유를 설명한다.

베이징(北京)시 쉐위안루(學院路)초등학교 3년생인 리쑹(李松)의 책가방에도 요즘 『논어』와 『맹자(孟子)』 등 중국고전이 들어 있다.

지난 8월 베이징의 25개 초등학교에서 '어린이 독경활동'이 시작됐다. 이미 전국적으로 30여개 도시에서 1백50만명의 초등학생들이 독경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인문주의 문예부흥을 뜻하는 '중국판 르네상스'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죽었던 공자(孔子)와 이백(李白)이 복고열풍 속에 중국에서 다시 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중국 건국 이후 호되게 비판 당했고, 문화혁명(1966~76)때는 아예 '공자 죽이기' 바람에 시달렸던 공자의 동상이 지난 9월 명문 인민대학(人民大學) 교정에 우뚝 섰다.

중국 우정국은 올해로 탄생 1천3백주년을 맞은 이백을 기리는 6종의 기념엽서 80만장을 발행했다. '조발백제성(早發白帝城.아침에 백제성을 떠나며)'등 이백이 남긴 명시(名詩) 여섯 수를 6종의 기념엽서에 담은 것이다.

올해 초 장쩌민(江澤民)주석은 '덕으로써 나라를 다스린다(以德治國)'며 덕치(德治)를 표방하고 나섰다. 마오쩌둥(毛澤東)시대를 중국인들은 '인치시대(人治時代)'라고 부른다. 덩샤오핑(鄧小平)의 시대는 흔히 '법치시대(法治時代)'로 일컬어진다. 인치의 폐해가 절정에 달했던 문혁을 겪은 鄧이 법과 제도화에 앞장섰던 탓이다.

鄧의 개혁.개방은 중국인들에게 물질적 풍요로 가는 길을 열어줬지만 수백명의 관리들이 부패혐의로 연루된 샤먼(廈門)시 밀수사건과 같은 도덕적 붕괴도 가져왔다.

중국 건국후 사라졌던 갱집단이 다시 생겼고, 도덕상의 혼란을 틈타 파룬궁(法輪功)과 같은 사교마저 창궐하고 있다. 도덕성 회복이 과제로 등장한 것이다.

중국 최초의 통일국가인 진(秦)은 법가(法家)로 일어섰다. 그러나 15년 영화(榮華) 끝에 무너진 것은 바로 덕치(德治)가 부족한 탓이었다는 것이 현 중국 지도부의 인식이다.

초등학교의 독경활동에 대해 "중국 교과서가 수천년 전으로 되돌아 가는 게 아니냐"며 반발하는 시각도 없지는 않다. 그러나 중국이 필요로 하는 인재는 단순 과기(科技)인재가 아니라 인문지식을 갖춘 과학도라는 주장이 더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이 오늘의 중국 현실이다.

베이징=유상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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