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시대 호적 훔쳐 1200억대 국유지 가로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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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일제 시대에 작성된 민적부(호적)를 위조해 시가 1000억원대의 국유지를 가로챈 일당 6명이 구속됐다.

서울북부지검 형사6부(부장검사 이재우)는 구청에 보관된 민적부를 훔쳐 위조한 뒤 소송을 내 16만여평의 국유지를 가로챈 혐의(공문서 위조 등)로 김모(58.부동산중개업)씨 등 6명을 구속했다고 29일 밝혔다.

김씨 등이 일본인 명의의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대유동 임야 16만평이 방치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2002년 초. 일본인의 이름을 확인하고 그해 4월 서울 마포구청에 보관된 에가시라 운페(江頭運平)의 민적부를 훔쳐냈다. 그리고 에가시라가 1920년 창씨개명한 자신의 아버지인 것처럼 민적부를 위조한 뒤 구청에 몰래 갖다놓았다. 이들은 2002년 11월 위조된 민적부를 증거로 내세워 서울중앙지법에 국가를 상대로 국유지 반환청구소송을 제기했고, 지난해 11월 승소해 16만여평의 소유권을 인정받았다. 이들이 가로챈 땅은 시가 1200억~1300억원에 달한다. 검찰은 김씨 등이 땅의 일부를 올해 초 팔아 수십억원을 챙긴 것으로 보고 수사 중이다. 검찰 관계자는 "김씨 등은 지난 8월까지 국가를 상대로 다섯 차례에 걸쳐 추가로 200여 필지 수천억원대의 국유지 반환청구 소송을 내 현재 소송이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국유지 반환 청구소송에서 국가 측 대리인으로 소송에 참여한 서울고검이 증거로 제출된 민적부가 위조된 것으로 보고 서울북부지검에 수사를 지시해 이들의 범행이 들통났다. 검찰은 재판이 진행 중인 다른 토지와 관련된 서류도 상당수 위조된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 검찰은 김씨 등이 제출한 민적부를 진짜라고 감정하고 1000여만원을 받은 혐의로 감정사 김모씨를 구속하고, 구청 관계자들이 범행에 관련됐는지를 조사하고 있다.

이수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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