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창하오-이창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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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주도권 잡은 창하오 "방심은 금물"

제5보 (75~100)=80까지 등이 두꺼워지자 우변 백△들과 호응해 중앙의 주도권이 백쪽으로 넘어가고 있다. 확정가로 말하더라도 백은 조금도 꿀릴 게 없다고 한다.

젊은 프로기사 중 누군가 묻는다.

"여기서부터 흑백을 바꾸어 둔다면 어찌될까."

여러 명이 거의 동시에 대답한다.

"李9단이 백을 쥔다면 백이 반면으로도 이기지 않을까."

그들은 이창호9단이 어떤 식으로 추격전을 펼까에 관심을 쏟고 있다. 백이 이기는 길은 수없이 그려진다. 그만큼 백은 쉽고 흑은 어렵다.

그러나 李9단은 이런 바둑을 역전시킨 일이 한두번이 아니기에 어느 누구도 '백 승리'를 장담하지 못한다. 프로들에게 각인된 이창호란 존재는 상상 이상이었다.

고행길에 들어선 李9단은 여전히 표정이 없다. 83에 4분, 85와 같은 뻔한(?) 젖힘에도 6분씩 고심하며 절름거리듯 먼 길을 가고 있다.

창하오9단은 얼굴이 약간 붉어진 채 사납게 판을 쏘아보고 있다. 극도의 긴장이 느껴지는 모습이다. 그러나 이창호에게 역전당해 가슴을 친 일이 어디 한두번인가.

이번만은 필사적으로 우세를 지켜야 하는데 과연 어느 길이 최선인가. 표정만으론 李9단이 우세하고 창하오가 불리한 듯 보인다.

조훈현9단은 백이 A, B 등의 선수를 놓치고 있다고 한다. 창하오9단은 88로 젖혀 다시금 공격적으로 나왔는데 李9단은 알았다는 듯 빵때림을 허용하며 99로 넘어간다.

불리한 쪽에서 받아들이기 힘든 굴욕적인 모습이지만 李9단은 현실을 직시하며 무한한 인내력으로 난국을 견디고 있다. 중앙은 별것 아니란 판단도 있다.

박치문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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