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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레반 전사 존 워커, 말콤 X 자서전 읽고 이슬람 개종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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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14세 때의 존 워커는 그저 얌전하고 평범한 소년일 뿐이었다. 거친 감정을 직설적으로 드러내는 힙합음악을 열렬히 좋아했던 것도 또래 아이들과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변호사 아버지와 어머니 밑에서 유복하게 자란 가정환경도 남 부러울 것 없었다.

그로부터 5년 후, 턱수염이 가득한 얼굴에 잔뜩 적의를 머금은 표정으로 TV화면에 등장한 워커의 모습은 전 미국인을 경악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는 조국의 청년들과 총부리를 겨누는 탈레반전사로 변신해 있었던 것이다. 그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을 "성전(지하드)에 참여한 전사"라고 소개하면서 "9.11 테러를 지지한다"고 말했다.

워커는 어떻게 탈레반전사가 됐을까. 미국 시사주간 뉴스위크 최신호가 당사자 및 부모와의 인터뷰 등을 통해 밝혀낸 경위는 이러하다. 1981년 샌프란시스코 근교의 마린 카운티에서 전형적인 백인 중산층 가정의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대안학교에 다니며 자유로운 환경에서 자랐다.

평범했던 워커의 삶은 16세 때 읽은 한권의 책으로 인해 그 누구도 예기치 못했던 방향으로 흘러갔다. 흑인운동가 말콤X의 자서전을 읽고 난 뒤 이슬람으로 개종한 것이다. 스스로 술레이만 알 팔리스로 이름을 바꾸고 턱수염을 기르며 이슬람 전통의상을 입고 다녔다.

학교를 그만 둔 그의 관심은 오로지 코란의 가르침을 외우고 기도하는 것이었다. 훗날 그는 이슬람학교의 동료들에게 "철저히 자기중심적이고 가족과 이웃을 등한시하는 미국인이 못마땅해서 그 대안을 평화와 관용의 종교인 이슬람에서 찾았다"고 개종한 동기를 밝혔다.

17세 때인 98년 말 단신으로 예멘에 갔지만 시아파와 수니파가 서로 싸우는 데 크게 실망한 워커는 점점 원리주의의 논리에 빠져들면서 세상의 변혁을 위한 정치의식을 싹틔웠다.

보다 더 순수한 이슬람세계를 동경하던 워커는 지난해 파키스탄의 북서변경주 반누시의 한 마드라사(전통적 양식의 이슬람 학교)로 옮겨갔다. 코란공부에 열중하던 그는 지난 4월 한 친구에게 "아프가니스탄에 매료됐다. 샤리아(이슬람법)가 어떻게 적용되는지 보고싶다"는 e-메일을 남긴 뒤 모습을 감췄다.

7개월여 만에 그의 모습이 발견된 곳은 마자르 이 샤리프의 포로 수용소. 부모의 표현대로라면 "싸움 따위는 평생 못할 것 같은 얌전한 아이"였던 그는 AK47 소총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전사로 변해 있었다.

예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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