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경제 살리기 운동 떠들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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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북한이 지난달 22일 국가건설 차원의 새로운 슬로건 '나남의 봉화'를 내건 이래 사회 전체가 이와 관련한 각종 집회 등으로 떠들썩하다.

'나남'은 함북 청진시 나남구역에 있는 나남탄광기계연합기업소에서 따온 것이며,'봉화'는 북한에서 '맨 처음 시작한 창조적.혁신적 발기'라는 의미를 갖는다(조선말대사전).

'나남의 노동계급처럼 모든 것을 자체의 힘과 기술로' 등의 구호가 담긴 포스터가 지난주부터 북한 전역에 나붙기 시작했다. 공장.기업소와 협동농장에선 궐기집회가 잇따르면서 '나남 따라배우기'가 한창이다.통일부 집계에 따르면 '나남의 봉화'를 제시한 이래 지난 5일까지 모두 56회의 궐기모임이 개최됐다.

북한이 경제선동을 위해 '봉화'식 슬로건을 내건 사례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98년 3월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이 성진제강연합기업소(함북 김책)를 방문한 뒤의 '성강의 봉화',지난해 2월 낙원기계연합기업소(평북 신의주)를 방문한 뒤의 '낙원의 봉화' 등이 이미 있었다.

그런데 나남탄광기계연합기업소가 최근 6백50t 규모의 대형 프레스를 자체 생산하는 데 성공한 것을 계기로 다시 '나남의 봉화'를 일으킨 것이다. 북한이 밝힌 '나남의 봉화'의 강조점은 끊임없는 사색을 통한 과학기술 개발을 비롯,▶유휴자재 활용▶열정적.진취적 사업기풍▶적극적인 실리 추구 등 얼핏 보면 추상적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기존 '봉화'와 차이가 없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남의 봉화'는 이전 '봉화'와는 다른 점을 갖고 있다.기술혁신과 업종전문화를 추구한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노동신문 등 북한 언론매체들은 '나남의 봉화'에 대해 "과학기술 중시사상이 반영된 경제 슬로건"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이 '봉화'는 모든 공장.기업소가 기술혁신을 추진, 자체 힘으로 생산목표를 달성하자는 구호인 셈이다.

가동 중단된 공장의 정상화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첨단기술을 도입해 생산설비를 탈바꿈하자는 것이다. 북한은 또 '나남의 봉화'를 계기로 기존 공장.기업소들이 주력상품 외에 여러 종류의 소비품을 생산하던 관행을 고쳐 업종 전문화를 꾀하고 있는 점도 주목된다.

한편 통일부는 세가지 '봉화'를 '거점도시화' 전략으로 파악한다. 한 당국자는 "북한의 3개 경제 슬로건은 모두 금속.기계공업 공장을 시작으로 동.서 공업지역을 교차하면서 공업 발전의 거점도시화를 꾀하고 있다"며 "'나남의 봉화' 이후에는 남포.개성 등 서부지역에 새로운 '봉화'를 지정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홍익표 연구위원은 "'성강.낙원의 봉화'가 고난의 행군, 사회주의강행군 시기에 경제 정상화를 위해 나온 것이라면 '나남의 봉화'는 보다 적극적으로 경제부흥에 나서겠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말했다.

정창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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