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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벤처다] 上. 모험 기업이 희망 동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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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 첨단 바이오 벤처인 진매트릭스의 한 연구원이 질량분석기를 이용해 B형 간염 바이러스의 유전자를 조사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코스닥시장의 거품 붕괴와 함께 벤처가 동반 추락한지 4년. 벤처인들은 뼈아픈 자기반성을 하면서도 벤처업계의 공과(功過)를 온당하게 평가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서울대병원 삼성 암연구동에 입주해 있는 진매트릭스. 질병 진단용 칩 기술로 특허 7개를 확보한 바이오 벤처다. 이 칩은 B형 간염 바이러스 치료제에 내성(耐性)이 있는지를 가려준다. 한국인은 간염치료제의 내성이 높은 편이다. 수도권 대다수 종합병원이 이 제품을 쓴다. 지난 19일 연구실 한켠에 있는 컴퓨터의 모니터에 고객들이 진단칩을 활용하는 상황과 그에 따른 로열티 수입금액이 실시간으로 접수되고 있었다. 이렇게 '자동 입금'되는 로열티는 한달 평균 6500만원에 달한다.

◆ 알짜 벤처 적잖아=지난 6월 22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 국내 최대 정보기술(IT) 전시회인 'SEK 2004'가 열리고 있었다. 이 행사를 둘러보던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은 '국산 원천기술 전시관' 앞에서 한동안 발길을 멈췄다. 이 전시관에 제품을 내놓은 회사는 네오엠텔.신지소프트.인트로모바일.리코시스 등이다. 세계 처음 무선인터넷 다운로드 기술과 동영상 압축기술 등을 개발했다. 이들 매출의 절반은 로열티 수입이다. 네오엠텔은 미 퀄컴사에서 로열티를 받는다. 김태희 씨앤에스 대표는 "이미 휴맥스.엔씨소프트처럼 외국 어디다 내놔도 손색이 없는 글로벌 벤처가 즐비하고 레인콤 같은 샛별이 뒤를 잇고 있다"고 말했다.

디지털 셋톱 박스나 온라인 게임, 인터넷.모바일 등은 벤처가 씨를 뿌린 사업이다. 특히 코아로직.엠텍비전 등 벤처의 부품 개발이 없었더라면 '휴대전화 신화'를 이루기 어려웠을 것이다.

특허청에 따르면 중소기업청이 공인한 벤처기업(8000여개) 중 절반 이상이 특허를 갖고 있다. 벤처기업당 평균 3.7개의 특허권이 있다. 오형근 벤처기업협회 상근부회장은 "벤처의 공(功)이 과(過)에 묻혀서 지나치게 폄하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 건전한 벤처정신을 살려야=벤처업계에 따르면 원래 벤처기업의 생존율은 5%도 안 된다. 그만큼 망하기 쉽다. 하지만 '국민의 정부'가 벤처진흥에 속도를 내다보니 탈이 생겼다. 결국 '벤처는 실패한 산업'이라는 어두운 이미지만 남기게 됐다. 더욱이 적지 않은 벤처 창업자들은 돈맛에 빠져 안일한 경영을 한 것이 사실이다.

중소기업청에 따르면 2001년 한때 1만2000개에 육박한 벤처 확인업체 가운데 2000여개사는 뚜렷한 기술력과 수익모델이 없다고 평가됐다. 급기야 일부 벤처들은 코스닥 시장에서 돈장난을 하다 퇴출됐다. 1980년대 초반 비트컴퓨터를 세워 오늘도 '벤처업체 1호 창업자'란 소리를 듣는 조현정 사장은 이에 대해 "초심(初心)으로 돌아가자"고 했다. 요즘엔 기술개발에 밤을 지새우던 도전과 창조의 정신을 쉽게 찾기 어렵다고 그는 덧붙였다. 인터넷TV 셋톱 박스로 기술력을 꽤 인정받은 A사는 2000년 당시로선 거액인 100여억원의 외부 투자를 받았다. 하지만 광고비.승용차 구입 등에 흥청망청 써 지금은 간판만 걸려있는 '무늬만 벤처'다. 미래산업을 창업한 정문술씨는 "시가총액이 수천억원에 이르던 벤처기업도 기술개발을 못해 쓰러진 것을 보고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삼성경제연구소 강원 수석연구원은 "각고의 노력 끝에 사업역량과 수익모델을 키워놓고 밖에 도움(투자유치)을 요청하는 자세를 보일 때 벤처에 대한 뿌리깊은 부정적 시각이 바뀔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심재우 기자
사진=임현동 기자 <hyundong3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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