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정산용 가짜영수증 요구 빗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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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지난 2일 완주군에 있는 한 사찰.60대 할머니가 스님에게 "아들 이름으로 2백만원짜리 기부금 영수증을 떼 달라"고 부탁했다.

스님은 "절에 다니지 않는 사람이 그 많은 금액을 시주했다고 거짓말을 할 수 없지 않느냐"며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할머니는 "지금껏 정성스럽게 부처님을 모신 내 얼굴을 봐서라도 영수증을 떼 줘라"고 우겼다.

종교단체나 의료기관 등이 12월 들어 기부금이나 영수증 발급 요청에 골치를 앓고 있다. 연말 정산을 앞두고 소득공제 혜택을 노려 헌금이나 진료비.약값 등을 부풀리거나 가짜 영수증을 떼려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전북지역 사찰.교회.한의원.치과병원.약국별로 10여곳씩 전화조사한 결과 최근 연말정산용 헌금.진료비.약값등의 영수증을 발급해 달라는 요구가 하루 4건꼴, 많을 때는 10여건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세법이 개정되면서 기부금의 경우 소득금액의 5%에서 최고 10%까지로 공제 혜택이 확대됐다.

때문에 절이나 교회 등에는 실제 헌금액보다 많이 낸 것으로 해달라거나 주변 친지들도 돈을 낸 것처럼 영수증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하는 신도들이 예년보다 훨씬 많아졌다.

완주군 A사찰은 "지난해의 경우 12월 한달 동안 40여건의 영수증을 떼 주었는데 올해는 발급 요청이 이보다 3배 이상 많아질 것 같다"며 "올해는 특히 기부금액을 지난해보다 2~3배정도 높여달라는 요구가 많다"고 털어놨다.

종교기관이나 의료기관들은 이같은 요청이 부당한 줄 알면서도 거절하지 못한 채 속앓이를 하고 있다.

전주시 효자동 S약국 이모(35.여)씨는 "동네 단골 등이 가짜 영수증을 부탁해 오면 앞으로의 관계 등을 생각해 발급해줄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주세무서 관계자는 "연말정산이 완료되는 내년 2월부터는 허위 영수증 발급, 금액 부풀리기 등에 대한 조사를 벌인다"며 "부당공제 사례가 드러나면 공제액 환수는 물론 세액의 10%를 더 추징당한다"고 밝혔다.

장대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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