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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호 기자의 e-스토리] KT 와이파이 국제로밍 서비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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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지난 14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중심가 맨해튼의 브로드스트리트 55번지 스타벅스 매장. 세계 금융의 메카인 월가와 뉴욕증권거래소(NYSE)가 그 뒤로 보인다.

뉴요커(뉴욕시민)로 붐비는 점심시간 이곳에서 노트북과 아이폰을 작동해 봤다. 부채꼴 모양의 ‘와이파이(WiFi·근거리 무선망)’ 신호가 뜨면서 인터넷에 자동 연결됐다. 맨해튼 길거리를 오가면서 아이폰으로 주변 상점들의 정보도 체크했다.

이는 미국 현지 통신회사가 아니라 KT의 무선데이터 국제로밍 서비스다. 7월 출시를 앞두고 두 달간 진행되는 시험서비스를 기자가 시연해 봤다. 이제 세계 주요 도시 한복판에서 국산 무선인터넷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이 회사의 와이파이 로밍은 미국·일본 등 99개국 통신회사의 서비스를 값싼 국내 무선데이터 요금으로 쓸 수 있다. 그동안 해외에서 무선데이터를 쓰려면 현지 서비스회사 홈페이지에 들어가 복잡한 신용카드 결제 절차를 거치고, 비싼 요금을 감수해야 했다.

가령 월가에서 노트북이나 스마트폰으로 e-메일을 체크하려면 현지 와이파이 이용권을 사야 한다. 아니면 스타벅스 매장으로 달려가 커피를 산 뒤 점원에게 얻은 비밀번호로 무선인터넷에 연결해야 했다.

KT의 와이파이 로밍은 이런 불편 없이 해외에서 노트북·스마트폰으로 무선인터넷을 값싸게 쓸 수 있다. 이 회사는 지난해 12월 애플 아이폰으로 국내에서 무선인터넷 불씨를 댕긴 데 이어 이런 로밍 서비스를 내놓는 등 변신을 추구하고 있다.

유선 사업을 중심으로 국내 최대 통신회사로 군림해 온 KT가 무선사업에서 예상을 뛰어넘는 공격경영을 펼치는 배경은 뭘까. 향후 통신시장의 주력이 될 것으로 보이는 무선데이터 시장의 주도권을 잡으려는 것이다.

KT는 애플 아이폰을 국내에 도입해 5개월여 만에 스마트폰 가입자 97만 명(아이폰 67만 명)을 확보했다. 피처폰(일반 휴대전화)시장의 만년 2위 설움을 딛고 스마트폰에선 현재까지 SK텔레콤과 대등한 승부를 벌이고 있다. 여기에 와이파이는 기호지세(騎虎之勢)다. 호랑이 등에 탄 김에 끝까지 가보자는 것이다.

KT는 서울·수도권에 와이브로(휴대인터넷)망을, 전국적으로 1만3000여 곳에 와이파이망을 갖춰 무선 인프라에서 크게 앞선다. 스마트폰을 무선모뎀으로 활용하는 ‘테더링(Tethering)’과 와이브로와 3세대 이통망을 와이파이로 각각 바꿔주는 단말기 ‘에그’와 ‘단비’를 최근 출시한 것도 인프라의 우위를 최대한 활용하려는 뜻이다.

아이폰으로 촉발된 KT와 SK텔레콤의 경쟁이 점입가경이다. KT는 아이폰에 이어 태블릿PC 아이패드도 연내 출시할 것을 저울질하고 있다.

휴대전화 시장을 절반 넘게 차지한 SK텔레콤이 가만히 있을 리 없다. 연내 1만여 곳의 와이파이망을 구축하기로 하는 등 맞불을 놓고 있다. 선의의 업계 경쟁은 소비자에게 좋은 법이다. 뉴욕 번화가의 한 카페에서 한국산 무선인터넷 서비스를 즐기며 이런 상념에 잠겨 봤다.

이원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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