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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격동의 시절 검사 27년 (4)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9면

4. 외압에 굴복한 검찰

박철언(朴哲彦)안기부장 특별보좌관은 인천지검 김수장(金壽長)특수부장을 만난 다음날인 7월 10일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金부장으로부터 사정을 잘 들었다. 고생이 많다. 장관.총장께도 원칙대로 사건을 처리해야 한다고 말했다"는 내용이었다. 나도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마치 천군만마(千軍萬馬)를 얻은 것 같았다.

朴특보와의 전화가 끝나자 곧 이어 법무부 김두희(金斗喜.전 검찰총장.법무부장관)검찰국장의 전화가 걸려왔다. 김성기(金聖基)장관이 아침 간부회의에서 "내 자리를 걸고 지시하는데 권인숙 사건을 원칙대로 파헤치라"며 "인천검사장에게 이 같은 내용을 전달하라"고 해서 연락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나는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그런 지시라면 金장관이 나에게 직접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번 '내사에 착수하라'고 신경질적으로 지시할 때와 지금의 지시내용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추측하면서도 나는 金국장에게 "장관이 갑자기 왜 그렇게 입장을 바꾸었느냐"고 반문했다. 나와 金국장은 고등고시 동기생이고 친구이기 때문에 장관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金국장에게 퍼부었다.

어제까지의 태도와는 판이한 장관의 이같은 지시가 취약한 정부권력에서 나오는 것인지, 줏대 없는 검찰권의 방황에서 나오는 것인지 나로서도 정확하게 단정할 수 없었다.

즉각 김수장 특수부장을 불러 "상부의 태도가 변하고 있는 것 같다"고 설명하고 "어제 박철언 특보에게 도움을 요청했던 사실은 우리 둘만의 비밀로 하자"고 다짐했다. 서로 위로와 격려를 하면서 사건의 수사에 대한 열정을 다시 한번 불태웠다.

검사들과 수사관들에게 "이제부터 내가 진두지휘 하겠다. 전 경찰이 조직적으로 은폐.조작하고 있지만 하나 하나 깨 나가겠다. 진실은 하나뿐이다"라며 자세한 수사방법까지 제시했다.

이 사건을 밝히지 못하면 인천지검은 안팎으로부터 비난의 화살을 면치 못할 상황이었다.

나는 "우리가 사건진상을 규명하지 못하면 '성 고문 주장은 허위라며 생떼를 부려온 경찰과 그동안 인천지검의 수사 방침에 못마땅해하던 상부로부터 십자포화를 맞게 될 것"이라고 상황을 설명하고 "모두들 비장한 각오로 최선을 다하자"고 호소했다.

그러다 7월 15일 오전10시 30분쯤 대검찰청에 불려갔다. 검찰총장은 대검차장과 나에게 "안기부장 등과 대책회의를 하고 왔다"며 "안기부에서는 수사결과 발표문과 대통령 보고문서 등에 성고문의 '性'자도 나와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고 전해주었다.

기가 막혀서 나도 모르게 쓴웃음을 짓자 총장은 기분이 상한 듯 "왜 웃느냐"고 물었다. 나는 아무 대답이나 해명도 하지 않았다.

모두가 너무 경직되었다. "미친 경찰관 한 놈 때문에 모두가 고생하고 욕을 먹어야 하는가"라는 회의가 들었다.

정치를 하고 대통령을 모신다는 사람들이 보고서에 성고문의 '性'자도 들어가서는 안 된다고 지시하는 상황이다. 그렇게 허위보고를 해서 최고 책임자의 어떠한 결심을 받는다는 것인지. 비정상적인 성도착증(性倒錯症)환자와 같은 경찰관 한명을 과잉보호하려는 의도가 무엇인가.

오후 3시쯤 대통령께 이 사건 관련 보고를 한단다. 하지만 "이 사건은 운동권의 공안기관 무력화 작전"이라던 당시 안기부와 경찰의 주장과 그것을 받아들이려는 검찰 수뇌부의 분위기로 보아 대통령이 이 사건에 대해 철저한 수사와 관련자 엄벌을 지시할 것을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다음날 출근을 하니 아침부터 청내 분위기가 말이 아니었다. 이만수(李萬壽)검사가 간부회의가 진행중인 검사장실로 들어왔다.

그는 "왜 부하들도 모르게 간부들만 속을 태우고 있느냐"며 "우리 검사들도 행동을 같이 할 테니 용기를 가지라"고 말한 뒤 소리를 내어 울었다.

나는 모든 검사들을 모아놓고 울고 싶어도 울지 못하고 내 마음대로 처신하지 못하는 심경과 입장을 李검사에게 설명하며 그를 달랬다. 선배들을 위해 어떤 고난도 함께 하려는 후배 검사들의 마음이 한없이 고마웠다. 회의가 끝난 뒤 검사장실 출입문을 안에서 걸어 잠근 채 소리 없이 울었다.

김경회 <前 한국 형사정책 연구원장>

정리=이상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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