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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당 대표에게 듣는다] 2. 한광옥 민주당 대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민주당 한광옥(韓光玉)대표의 입술 주위는 부르터 있었다. 요즘 신경쓸 일이 많아서 그렇다고 했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당 총재직 사퇴 이후 리더십의 공백을 메워야 하고, 당 발전특위에서 논의 중인 당 체제 개편과 향후 정치일정 문제도 무리없는 연착륙을 유도해야 한다.

과도체제의 당 대표임을 의식한 때문인지 韓대표는 민감한 사안에 대해 소신있는 답변을 하려 들지 않았다. 아무리 물어도 원론 수준의 발언을 되풀이할 뿐이었다.

그는 사전에 답변서를 준비하지 않았는데도 '무난한' 대답을 했다. 자신을 향한 당내의 비판과 의심에 대해서는 "정치는 복잡하게 하는 게 아니라 쉽고 단순하게 하는 것"이라며 자신감을 보였다. 대표실에는 여전히 대통령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인터뷰는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 대표실에서 김두우(金斗宇)정치부장이 1시간20분 가량 진행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金대통령의 총재직 사퇴 이후 만나거나 전화를 한 적은 없나요.

"대통령이 총재직을 사퇴하고 국정에 전념한다는 것은 당과의 약속이자 국민과의 약속입니다. 만난 일은 한 번도 없으며 전화통화는 있었지만 당무관계는 아니었습니다."

-2일 대통령의 출국 때 당에서 아무도 안나간 건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입니까. 한나라당에서는 김무성 총재비서실장이 나갔던데.

"일부러 안 나간 건 아닙니다. 나는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청와대에서 나오지 말라는 연락이 왔다고 해서 그렇게 됐습니다."

-그러면 차기 대선후보 경선에서도 金대통령이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합니까.

"나는 그렇게 봅니다. 대통령은 그런 의심을 받지 않으려 할 겁니다."

-권노갑(權魯甲)전 고문이 경선 후보 중 누구를 지지한다고 하면 대통령의 뜻으로 여겨지지 않겠습니까.

"아무도 대통령의 뜻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으로 봅니다. 이미 대통령이 중립이라고 선언하지 않았습니까."

-총재직 사퇴를 만류하기 위해 지난 11월 8일 청와대에서 1시간 가량 대통령을 독대했는데 어떤 메시지가 있었습니까.

"대통령은 '당 총재직을 떠난다고 한 이상 번의(飜意)할 수는 없다. 당이 거듭나는 모습을 보여줘서 국민이 당에 대한 기대를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해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의 과도체제를 조속히 마무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나도 빨리 끝내야 한다는 것엔 공감합니다. 그렇지만 당이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운영되는 누를 범해선 안됩니다. 전당대회 시기문제에 대해선 특위의 결정을 따를 겁니다."

-당의 뿌리를 간직하는 것과 내년 대선에서 승리하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우선과제라고 봅니까.

"그건 동전의 양면같은 상호보완적인 문제입니다. 우리가 내년에 승리하려면 국민의 지지를 획득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이제까지 대통령이 당을 이끈 리더십.정책.정강 등에서 취할 것은 취하고 보완할 것은 보완하는 과정을 겪어야 합니다. 환골탈태하면서도 온고지신하는 자세로 개혁하면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당에 뿌리가 거의 없는 분들이 후보가 되면 당 노선을 제대로 지켜낼 수 있겠습니까.

"당원들에 의해 후보로 선출되는 순간부터 그 사람은 정체성을 부여받고 이후부턴 당을 대표하는 사람이 됩니다. 당원 의사에 따라 행동하고 거기에 따라 선거운동이 전개될 것입니다. 누구라도 해낼 수 있습니다."

-대통령을 이어받을 사람의 조건은 무엇입니까.

"우리 당엔 민주화 세력.개혁적 세력.양심적 산업화세력 등 세 그룹이 있습니다. 지역성을 탈피해 국민정당으로 탈바꿈시키고 당의 민주화와 중산층.서민의 정당이란 정체성을 구현할 수 있는 인물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대통령께 중립내각 구성을 건의할 용의가 있습니까.

"이제 대통령 임기가 1년3개월 남았는데 국정개혁을 마무리할 수 있는 유능한 전문인들이 보필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개각은 대통령이 결정할 사항입니다."

-당 발전특위에서 예비선거제.상향식 공천제.총재제도 폐지 등을 말하고 있는데 너무 의욕이 앞선 것 아닌가요.

"특위에서 당내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당이 수용할 수 있는 합리적인 당 발전안을 도출해낼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특위에선 3월 동시전당대회쪽으로 가닥을 잡았지만 일부에선 그런 정치일정은 전당대회에서 결정해야 한다고 반대하고 있는데요.

"다수의견이 뭐냐는 차원에서 봐야 합니다. 국가를 먼저 생각하고 이후에 당과 나를 생각해야 합니다. 생각은 다른데 있는데 빙빙 돌려서 말하면 국민만 피곤하게 됩니다. 정치는 쉽게 해야 합니다. 원칙의 눈으로 보면 풀립니다."

-개혁신당설 등이 나도는데 당이 쪼개지는 사태는 없을까요.

"민주 정당에서 경선을 통해 후보가 선출되면 거기에 따라야 합니다. 신당설은 구체적인 움직임이 있는 건지 간헐적으로 의사교환만 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3金연대니 반(反)이회창 연대니 하면서 여권의 정계개편 가능성을 점치는 사람도 있는데요.

"왜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인위적인 정계개편을 시도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고 실현가능성도 없습니다."

-최근 한나라당이 교원정년 연장안을 내놨다가 수에선 앞섰지만 여론에 밀려 물러섰는데 원내소수라도 명분만 있으면 밀리지 않는다는 새로운 정치의 가능성을 보여준 것 아닙니까.

"난 한나라당이 교원정년을 1년 연장한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벌써 교만해졌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국민 다수의 뜻과 어긋나기 때문에 큰 파문을 일으킬 것으로 봤고 집요하게 반대입장을 전개했습니다. 오만해진 태도를 수정한 것은 잘한 것으로 봅니다."

-그런데 신승남(愼承男)검찰총장 문제는 한나라당이 결국 탄핵안을 제출하는 사태로 번지지 않겠습니까.

"愼총장은 아직까지 구체적인 혐의가 드러난 것은 없습니다. 검찰총장 임기제는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기 위한 것인데 정치적으로 문제를 다루는 것은 많이 잘못된 것입니다."

-국회가 증인으로 출석하라고 결정한 것을 무시해도 된다는 겁니까.

"부담스럽기는 하겠지만 야당의 결정이 잘된 것은 아닙니다."

-검찰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만연해 있고 여러가지 사건으로 검찰 간부들이 옷을 벗는 사태가 발생했는데 총장이 계속 안나오겠다는 것은 명분이 없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특별한 잘못이 없는 한 검찰총장의 진퇴문제가 정쟁이나 정략의 대상이 돼서는 안된다는 게 내 생각입니다. 검찰의 판단을 존중하겠습니다."

-공적자금 문제는 어떻게 대응하실 겁니까. 한나라당은 국정조사와 청문회를 요구하고 있는데요.

"철저히 수사해 책임을 묻고 돈이 잘못 나갔으면 환수해야 합니다. 다만 투입한 공적자금을 빼돌린 게 아니라 이미 그 전에 돈이 빼돌려졌고 금융기관이 불가피하게 공적자금을 투입한 것입니다. 잘못한 사람들에게도 책임이 있으면 문책해야 합니다."

정리=김정하 기자

사진=장문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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