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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개의 코리아' 개정판] "임동원씨 극비 방북"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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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남북 정상회담을 불과 18일 앞둔 지난해 5월 27일 임동원(林東源) 당시 국정원장이 극비리에 평양을 방문,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과 네시간에 걸쳐 면담한 사실이 확인됐다.

돈 오버도퍼 존스홉킨스대 교수(전 워싱턴포스트 국제문제 전문기자.사진)는 곧 출간하는 『두개의 코리아(The Two Korea)』 개정판에서 이를 공개했다.중앙일보가 입수한 『두개의 코리아』 개정판에서 林원장과 올브라이트 전 미 국무장관이 金위원장을 면담한 부분을 요약 소개한다.

◇ 임동원의 김정일 면담=지난해 3월9일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김정일 위원장을 남북 정상회담 테이블로 유도하기 위해 사회간접자본 및 농업기반시설을 지원할 의사가 있다고 운을 뗐다.

金대통령의 연설은 워싱턴을 놀라게 했다. 그는 연설 내용을 사전에 미국에 귀띔해주지 않았다. 격노한 올브라이트 장관은 이정빈(李廷彬)외무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항의했다. 李장관은 金대통령이 마지막 순간까지 연설문을 수정하는 바람에 미국에 알려줄 겨를이 없었다고 해명했다.

林원장은 5월 27일 극비리에 베이징(北京)을 거쳐 평양에 들어갔다. 그는 평양에서 김정일과 만나 네시간 동안 얘기를 나눴고 서울로 돌아온 즉시 金대통령에게 6개항의 '김정일 보고서'를 제출했다.

*** 김정일위원장 면담후 DJ에 보고서 제출

첫째, 김정일은 김일성보다 훨씬 강력한 통치자다.

둘째, 북한 체제에서 김정일만이 유일하게 개방적.실용주의적인 사고를 지녔다.

셋째, 김정일은 상대방의 말을 잘 듣는 편이다. 김정일은 林원장이 말할 때 마치 학생이 수업시간에 필기하듯이 수첩에 꼼꼼히 적었다.

넷째, 김정일은 상대를 설득하려고 마음 먹으면 단호한 입장을 취한다.

다섯째, 김정일은 연장자에게 깍듯이 예의를 차린다.

여섯째, 김정일은 유머 감각의 소유자다.

◇ 올브라이트의 김정일 면담=체코 출신으로 평생을 공산권 연구에 몰두해온 올브라이트 장관에게 평양은 그리 신기한 곳이 아니었다. 올브라이트를 정작 놀라게 한 것은 김정일이었다. 올브라이트는 면담을 시작하자마자 김정일이 언론이 묘사해온 음험한 유형의 공산당 지도자는 아니라는 점을 알아챘다.

*** 예상 뒤엎은 김정일 성격 올브라이트도 놀라

김정일은 정상적인 사람이며 가끔은 사근사근한, 붙임성 좋은 인물이었다. 그는 또 스마트했다. 올브라이트는 김정일에게 미사일 문제를 꺼냈다. 미사일 현안은 불과 몇시간 전 북측 전문가에게 통보한 내용이었고 전문적이고 까다로운 문제였다.

그러나 김정일은 올브라이트의 질문에 메모도 보지 않고 막힘없이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그는 사정거리 5백㎞ 이상의 대륙간 탄도탄에 대해 ▶추가 생산 및 배치를 중단하고▶검증절차를 수용할 가능성을 보였다.

그러나 이미 생산한 미사일 처리 및 탄두 중량에 대해선 밝히지 않았다. 또 강압적 검증(Intrusive Verification)이 돼선 안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김정일과 올브라이트는 세부사항에 대해 일주일 뒤 말레이시아 콸라룸푸르에서 속개될 북.미 미사일협상에서 타결짓고자 했다. 그러나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빌 클린턴 대통령의 임기가 초읽기에 들어간 시점이었다.

더욱이 조지 W 부시 대통령 당선자는 미사일협상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또 아랍.이스라엘 유혈충돌이 일어나는 바람에 클린턴은 갑자기 이스라엘을 방문해야 했다. 결국 미 국무부는 12월 마지막 주 북한에 클린턴의 방북이 불가능하다고 통보했다.

클린턴 대통령은 김대중 대통령에게 전화로 이 사실을 알리고 청와대가 이를 발표하도록 했다.

정리=최원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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