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월드컵 주사위는 던져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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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월드컵 본선 조 추첨 행사가 세계적인 관심 속에 성대하게 열린 것을 신호탄으로 2002 한.일 월드컵이 사실상 개막됐다. 21세기 들어 처음 맞는 지구촌 축구 축제가 드디어 시작된 것이다. 이제 개막전이 열리는 내년 5월까지 5대양 6대주가 월드컵 열기로 달아오르면서 한반도는 세계인의 눈과 귀 한가운데 자리잡게 됐다.

역사적인 축제가 우리나라에서 열리게 된 것은 큰 자랑거리요, 가슴 뿌듯한 일이다. 이미 88서울올림픽과 86아시안게임 등 수많은 국제행사를 통해 우리의 역량을 세계에 과시해 왔지만 월드컵은 그 어느 행사보다 큰 무게를 지녔다는 점에서 만반의 준비로 한 점 차질없이 치러져야 할 것이다.

월드컵 개최국가로서 우리는 그라운드 안과 밖에서 반드시 이뤄야 할 목표가 있다. 경기장 안에서 16강 이상의 좋은 성적을 거둬야 하고 경기장 밖에서는 완벽한 손님맞이를 해야 한다는 의미다.

한국 축구는 이번 월드컵에서 1승과 16강 진출이라는 숙원을 풀어야 한다. 우리 안방에서 열리는 대회가 남의 나라 잔치로만 끝나서는 안된다. 사실 여건은 그 어느 대회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좋은 편이다. 개최국으로 톱 시드를 배정받아 일단 최강팀은 피한 데다 크고 작은 홈그라운드의 이점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 5개 대회를 보더라도 월드컵 개최국이 예선 탈락한 적은 없었다. 또 국내 축구전문가 70%가 16강 진출을 예상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과 같은 조에 편성된 포르투갈.폴란드.미국도 결코 손쉬운 상대가 아니다. 한국 축구가 세계축구연맹(FIFA) 랭킹 43위란 객관적 자료도 무시하기 힘들다. 남은 5개월여 동안 경기력 극대화를 이뤄내야 하는 히딩크 사단의 어깨가 무거울 수밖에 없다.

경기장 밖의 손님맞이 준비도 중요하다. 특히 우리 고유 문화를 세계에 알리고 월드컵 개최국으로서의 명예와 자존심을 지키면서 경제적인 실속도 챙기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아야 한다. 어느 쪽도 월드컵 사상 첫 공동 개최국인 일본에 뒤지는 일이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중국의 경기를 한국에서 열도록 한 FIFA의 결정은 일단 희소식이다. 중국인 관람.관광객 6만명 이상이 몰려오는 중국 특수(特需)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월드컵 이후'까지 염두에 두고 언어.숙박.교통.음식 등 모든 면에서 점검, 또 점검이 필요하다. 지리적으로나 경제 규모로 보아 중국은 우리의 영원한 시장이므로 장기적 안목에서 접근하는 한편 중국인의 불법 체류.취업 등 대회 후의 부작용도 대비해야 할 것이다.

월드컵의 경제성.사업성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엄청나다. 월드컵 특수를 이용하면 우리 경제 부흥의 계기로 삼을 수도 있다. 그러나 아직 우리나라는 엠블럼 등 휘장 사용 사업조차 제대로 못하는 실정이니 참으로 안타깝다.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다. 정치.경제.사회.문화 각계 각층이 모두 월드컵을 향해 뛰어야 할 시점이다. 2002 월드컵이 우리나라, 우리 축구가 한단계 발전하는 사다리가 될 수 있도록 모두 지혜와 열성을 모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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