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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차별 전화판촉 공해 못참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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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주부 朴모(35.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씨는 11월초 한국통신의 '114 안내전화번호부'에서 자신의 집 전화번호를 뺐다.

시도 때도 없이 걸려오는 부동산 투자 권유 전화와 요리.꽃꽂이 학원 소개, 제품판매 안내 등의 '전화공해'를 더 이상 견디기 힘들어서다. 朴씨는 "자신을 '부동산 투자 전문가'라고 밝힌 남자가 집으로 찾아와 설명을 하겠다며 집주소까지 꼬치꼬치 캐묻는 데는 더 참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휴대폰 이용자 趙모(37.인천시 서구 가정동)씨도 전화폰팅 업체의 무차별 문자 메시지 공세에 치를 떤다. 趙씨는 "한밤에 '오빠 사랑해, 심심하면 연락…' 등의 메시지가 휴대폰에 마구 찍혀 아내와 심하게 다투기도 했다"고 말했다.

전화를 이용한 텔레마케팅이 기승을 부리면서 무차별 전화공세에 시달리다 못한 시민들의 '전화번호 감추기'가 급증하고 있다.

이에 따라 114를 통해 전화번호 안내를 받으려는 시민들의 불편이 커지고 있다.

30일 한국통신에 따르면 전국의 유선전화 가입자(회선기준) 2천3백60만명(회사 내 내선 포함) 가운데 전화번호 안내서비스에서 빼줄 것을 요청해 제외된 가입자는 전체의 30%(6백89만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선전화 가입자가 6백30만명으로 전국에서 가장 많은 서울의 경우 2백70만명(43%)이 114에서 자신들의 이름을 뺐을 정도다. 다른 지역도 사정은 마찬가지여서 ▶경기.인천.강원 31%▶부산.경남 27%▶광주.전남 23% 등이 안내서비스에서 제외됐다.

한국통신 전남본부의 경우 올 들어 전화번호 안내서비스에서 제외시켜 줄 것을 요청한 건수가 31만8천건으로 지난해보다 25%나 늘었다. 몇년 전만 해도 사생활 보호를 이유로 유명인사.연예인 등 극소수에 불과했던 전화번호 감추기가 일반 시민들에게까지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통신 안내사업부 서정곤 부장은 "기업의 경우 회사 홍보차원에서 대부분 자사의 내선 전화번호까지 114에 무료로 등록한다"며 "전화번호를 감추는 가입자들의 대부분이 일반인"이라고 말했다.

이 회사 '100 고객센터' 상담원 金모(23)씨는 "하루 2백여통의 상담전화 중 10여건은 이름을 삭제해 달라는 전화"라며 "경제난으로 채무 독촉을 피하기 위해 전화번호를 감추려는 사람들도 적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텔레마케팅으로 인한 피해도 속출해 한국소비자보호원에는 1999년 6건에 불과하던 관련 피해 민원 건수가 올해는 1백16건으로 늘었다. 대부분 ▶제품 사기 판매▶잦은 전화로 인한 스트레스▶카드 도용 등에 관한 것이었다.

가입자가 2천8백만명에 이르는 휴대폰은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SK텔레콤 관계자는 "텔레마케팅 업체들이 무작위로 번호를 뽑아 동시다발적으로 홍보용 문자.음성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며 "기술적으로 이를 막을 방법은 없다"고 말했다.

이동통신업체들은 '700''080'등 유료 콜백서비스의 경우만 업체들의 무차별 문자발송을 차단할 뿐이다.

한국소비자보호원 이진숙 홍보과장은 "마케팅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전화판촉'에 개인정보가 악용되는 사례가 많아 사생활 보호 대책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양영유.천창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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