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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가임대차 보호법 여야합의 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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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상가임대차보호법안은 상인단체와 시민단체 등의 요구에 따라 의원입법 형태로 이뤄져 재정경제부.건설교통부 등 경제부처의 입지가 적었다.상가건물주 단체도 없어 건물주의 입장은 거의 반영되지 않았다.국회 공청회는 한차례에 그쳤고,대한변호사협회 등 몇몇 단체가 반대입장을 보이려다 규탄시위에 밀려 '공론화 논의'도 어려웠다.

◇ 도입 과정=영세상인 보호의 필요성이 본격 제기된 것은 1989년.당시 주택임대차보호법이 시행되면서 상가임차인도 보호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는데,임대인의 재산권을 침해할 우려가 크다는 이유로 흐지부지됐다.

그런데 외환위기 이후 대형 상가들이 부도로 쓰러지면서 상인들이 보증금을 날리는 등 피해가 급증하자 다시 불거졌다.특히 지난해 10월 참여연대.민주노동당.전국상가임차인연합회 등 45개 단체가 상가임대차보호운동본부를 만들어 국회에 '상가임대차 보호법안'을 입법청원했다.올 들어 여야 의원들도 4개 법안을 의원입법 형태로 국회에 냈다.

◇ 영세상인 보호 기틀 마련=이 법이 내년부터 시행되면 영세상인들은 상가가 경매로 넘어가더라도 '대항력'을 인정받아 최소한의 임대보증금은 건지는 등 피해를 줄일 수 있다.상가 주인이 일방적으로 정하던 임대료와 임대기간도 법으로 제한돼 세입자들이 안정적으로 장사를 할 수 있는 길이 마련된다.

참여연대 박원석 시민권리국장은 "건물 주인이 일방적으로 보증금 인상을 요구하는 것이 관행처럼 돼 있다"며 "영세상인들이 영업활동에 필요한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정기국회에서 법안을 통과시키는 데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 제2전세금 파동 날까=전세 입주자를 보호한다며 90년 주택 임대기간을 1년에서 2년으로 늘리자 전셋값이 두배로 뛴 전세금 파동의 재연이 우려된다.자동 계약연장 기간이 5년인데다 임대계약 확정신고로 관할 세무서를 이용하도록 돼 있어 임대소득이 노출됨에 따른 세 부담까지 세입자에게 전가될 가능성이 있다.

여기에 연간 보증금과 월세 등 임대료 인상비율이 시행령으로 정해지면 건물주들은 처음 계약할 때 임대료를 한꺼번에 크게 올려받으려 들 수 있다.

상가 건물의 경우 지주가 땅만 대고 은행대출로 공사비를 마련,건물을 지은 뒤 이를 은행에 담보로 내놓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임차인에게 우선 변제권을 주면 그만큼 건물의 담보가치가 떨어진다. 이렇게 되면 상가 신축이 어려워져 공급이 줄어들고,결국 기존 상가의 임대료가 올라가 임차인들에게 또다른 부담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 허점 있는 법안=법안에 "임차인(세입자)의 계약갱신 요구에 대하여 임대인(건물주)은 정당한 사유 없이 일정기간(5년) 이를 거절하지 못한다"고 돼 있다. 여기서 자동 계약연장을 거절할 수 있는 사유 조항인 '3개월 연속 연체'도 악용될 소지가 있다. 임차인이 한달치만 내고 두달을 안내고, 다시 한달을 내는 방식으로 연속 3개월 연체만 피하면 건물주가 손을 쓸 수 없다는 것이다.

등기부등본을 떼 담보 설정이 없는 것을 확인한 뒤 계약하고, 이를 세무서로 가져가 확정신고를 받아도 보증금을 1백% 보장받지 못하는 모순도 생길 수 있다. 확정신고로 등기상 우선순위를 확보하더라도 다른 입주상인의 최우선변제권에 밀릴 수 있기 때문이다.

◇ 은행.백화점도 비상=은행권이 상가 등 비주거용 건물을 담보로 잡고 빌려준 돈은 약 64조원.임차인에게 최우선 변제권을 주면 은행은 앉아서 담보가치 손실을 본다. 최우선 변제권을 건물가격의 절반으로 보면 은행권은 30조원의 손실을 볼 수 있다.

은행연합회 관계자는 "영업용 건물을 담보로 금융기관이 빌려준 돈이 전체 여신의 20~25%"라며 "소액 임차금 우선변제만큼 담보가치가 떨어지면 대출을 기피하거나 회수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법안 적용대상에 백화점.할인점이 들어간 점도 논란거리다.백화점에선 유행과 계절.판매실적에 따라 한해에도 몇차례 매장 주인이 바뀌기도 한다.한국백화점협회 박태우 부장은 "임대료를 1년에 한번만 올려야 한다면 임대보증금 대신 매출액의 일정액을 월세로 내는 '수수료 매장'은 모두 없애야 할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효준.강황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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