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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관객의 선택 강요말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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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죽은 '고양이'를 살리자는 운동(?)이 영화계를 흔들고 있다. '고양이를 부탁해'라는 영화가 괜찮은 작품이라는 평가와는 달리 흥행에서 참패하자 이를 되살려야 한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연이어 터지는 한국 영화의 대박 신화는 영화계를 들뜨게 만들고 있지만 한편에서는 최근 현상이 한때의 거품이며 지나치게 오락적.소비적 경향으로 흐르고 있다는 지적을 한다.

*** '좋은영화'왜 외면당하나

규모와 내용이 균형을 잃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 영화의 수준을 낮춘다는 '조폭영화'들은 비난에도 불구하고 흥행선풍을 계속하고 있으며 '좋은 영화'들은 변변하게 흥행을 하지 못하는 현상을 증거로 내세우기도 한다.

'고양이를 부탁해'라는 영화를 살려야 한다는 주장이나 '와이키키 브러더스'를 제작한 영화사가 아예 극장 하나를 빌려 상영을 계속하겠다고 나선 일은 지금의 이중적 인식을 드러내는 현상이다. 더 나아가 한국 영화의 최소상영 일수를 보장해줘야 한다느니,예술영화 전용관을 만들어야 한다는 등의 주장이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이같은 시도는 자칫 영화의 가치를 왜곡하거나 관객들에게 선택을 '강요'할 수 있다. 모자라고 아쉬운 부분은 모두 정책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거나 어떤 일이 있더라도 한국 영화, 그 중에서도 '예술영화'는 보호해야 한다는 문화적 쇼비니즘의 함정에 스스로 빠질 수도 있다는 점을 경계해야 한다. 어떤 영화를 만드는가는 제작자나 감독이 결정할 수 있지만 그 중에서 어떤 것을 볼 것인가는 전적으로 관객의 선택이다.

새로운 영화가 떠오르고, 스타가 탄생하는 것도 관객의 선택이 만드는 현상이다. 거장이 사라지고, 멜로드라마가 유행하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면 액션이나 코미디가 그 자리를 대신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한때 로맨틱 코미디 영화가 유행할 때는 그런 영화들만 나오는 듯하다가 어느 사이에 액션이나 공포영화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조폭영화' 역시 한때의 현상이다. 이 과정에서 '좋은 영화'가 외면당하고 그렇지 않은 영화가 주목받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영화의 역사는 그같은 선택의 과정이다.

'고양이를 부탁해'나 '와이키키 브러더스' 같은 영화들이 좋은 영화라는 주장은 주관적이다. 어느 요소에 주목하는가에 따라 평가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소재가 그럴 듯하다거나 구성이 좋다거나 할 수도 있고, 연기나 연출이 괜찮다든지 하는 등의 이유도 나름대로 타당하다. 하지만 그것이 모든 사람들로부터 동의를 얻을 수 있는가는 또 다른 문제다.

좋은 영화라 하더라도 재미가 없다면 외면당할 수도 있고,동시대의 관심거리가 되지 않는 경우일 수도 있다.'좋은 영화'라고 흥행에서 성공해야 한다는 주장 또한 선동적이다. 칸이나 베니스.베를린 영화제 수상작이라면 작품성과 실험성.예술성을 두루 갖추었다고 누구나 인정할 만하지만 그 영화들 중에서 흥행에 성공한 경우는 가뭄에 콩나기보다 더 드물다.

작품성만으로 따진다면 미국의 오락영화들은 외면받아 마땅하고 수많은 영화제에서 선정된 '걸작' 영화들은 환영과 지지를 받아야 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평론가.전문가들의 선택과 관객의 선택이 다르다는 것을 뜻한다.

평론가들이 '고양이를 부탁해'나 '와이키키 브러더스'가 '좋은 영화'이고 '볼 만한 영화'라고 아무리 목청을 높여도 관객들이 동의하지 않는다면 결과에 대해서는 겸손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 흥행 성적도 시장의 논리

특정한 영화가 수준 높은 작품이라는 이유로 많은 관객들이 보아야 한다며 바람을 잡고, 극장을 통째로 빌려 상영을 계속하겠다는 것은 주관적인 기준을 따르라고 강요하는 것이거나 돈을 들여서라도 기록을 바꾸고야 말겠다는 오만이다.

그같은 행위들은, 관객은 무지하며 좋은 영화를 알아보지 못하며 저급한 오락영화에 현혹당하고 있다는 현실을 안타깝게 생각한 나머지 가르쳐서라도, 돈을 들여서라도 상황을 바꾸어 놓아야 한다는 인식을 드러낸다. 극단적으로는 '좋지 않은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는 그러지 말라고 시위를 하는 일이 생기지 말란 법도 없다.

한국 영화가 성장하고 있는 것은 영화인들의 노력과 관객의 지지가 있기 때문이다. 어떤 문제가 있다면 그 또한 영화인들의 노력과 관객의 현명한 판단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믿어야 한다. 죽은 고양이는 아깝더라도 미련을 두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시장의 논리이자 영화의 현실이다.

조희문(상명대 교수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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