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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외동포법 개정 사방에 지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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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정부수립 이전에 해외로 나간 동포와 그 자손들에겐 출입국 등에서 혜택을 주지 않았던 '재외동포의 출입국과 법적 지위에 관한 법률'(재외동포법)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리자 외교부는 난감해하는 분위기다.

이 결정의 취지대로 법을 개정하면 중국 조선족과 러시아 고려인이 혜택 대상에 포함돼 양국과의 외교적 마찰이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2년 전 현행 법률 제정 때 '혈통주의'라며 양국이 반발하자 대상자를 정부수립 이후 이주자로 제한했는데,헌재 결정은 이 제한을 풀라는 것인 만큼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앞 뒤를 재보지 않은 졸속 입법 때문에 헌법과 외교 사이에서 정부가 갈피를 못잡게 된 셈이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중국의 반발이다. 소수민족 문제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중국으로선 조선족이 재외동포법 대상에 포함되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외교부 관계자는 "'발전'을 향후 10년의 기치로 내건 그들로선 소수민족 사회의 변화보다는 안정을 원한다"며 "조선족의 대이동을 몰고 올지도 모를 조치에 대해선 단호하게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조선족 사회의 공동화(空洞化)나 문화적 영향을 우려한다는 것이다. 중국은 재외동포법 적용대상자 확대가 한반도 통일 후의 국경확대를 위한 포석이라고 볼 가능성도 있다.

북한과도 문제다. 조선족과 고려인을 법 대상자에 포함하면 북한이 지역적 연고를 들고 나와 문제삼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다른 하나는 세계의 조류다. 미국이나 유럽국가들은 자신들의 국적이나 시민권을 가진 우리 동포에게 별도의 혜택을 주는 데 대해 형평성의 문제를 들고 나올 것이라는 시각이다.

특히 재일동포 사회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재일동포는 당초 일본 국적을 포기한 자신들이(재외국민) 외국 국적을 가진 다른 지역 동포와 동등한 대우를 받는 데 반대해왔다. 재외국민과 재외동포에 대한 혜택이 같다면 굳이 한국국적을 고집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재일동포의 귀화바람이 거세질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헌재의 결정을 살리는 방향으로 재외동포법을 개정하면 사태만 꼬이게 된다는 게 외교부의 시각이다. 한 고위 관계자는 "결함이 드러난 재외동포법은 차제에 아예 폐지하고 경제분야나 출입국 등 관련분야 법령을 개정해 실질적 혜택을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법 폐지의 문제도 만만찮다.중국 동포의 실망도 클 뿐더러 국내 시민단체의 반발도 부담이다. 헌재 결정은 앞으로 2년까지 유예기간을 두고 있는 만큼 이 문제는 차기정권의 재외동포 정책차원에서 검토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오영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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