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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지식인 지도] 가까운 미래의 지적 풍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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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근년에 과학과 기술이 아주 빠르게 발전하면서, 특히 생명과학과 정보기술이 큰 성과를 거두면서, 생명의 본질에 대한 인식이 근본적으로 바뀌었다.

생명을 정의하는 일은 무척 어렵지만 생명 현상에서 자기 증식이 중심적 요소라는 것에 대해선 모든 사람들이 동의했다. "생명은 자기를 더 많이 합성하기 위해 에너지를 쓰는 것"이라는 미국 생화학자 존 노스롭의 정의는 이런 전통적 견해를 잘 대변한다.

이제 많은 생물학자들이 생명을 '정보처리(information processing)'라고 여긴다.실제로 생명체들의 모든 활동들은 정보처리를 핵심적 요소나 과정으로 포함한다. 자기 증식이란 결국 '자기'를 정보의 형태로 인식한 뒤에 그것을 처리하는 과정이며, 그 일을 수행하기 위해 에너지를 쓰는 일도 다양한 정보처리를 핵심적 과정들로 포함한다.

바로 그 정보처리의 유무가 생명체들과 비생명체들을 구분하는 가장 근본적이고 확실한 기준이다. 살아있는 것들은 모두 정보를 처리하면서 존속한다. 생명이 없는 것이 정보를 처리하는 경우는 없다.

생명의 핵심적 특질이 정보처리이므로 그 과정에서 얻어진 지식이 삶에서 핵심적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당연하다. 지식을 한껏 넓게 정의해서, 그런 정보처리 과정을 거쳐 얻어진 모든 정보들이 지식에 포함되도록 한다면 삶과 지식은 거의 동의어가 된다. 그리고 지식에 관한 논의에선 그렇게 넓게 정의된 지식을 다루어야 한다.

흔히 지식이란 말로 지칭되는 '드러난 지식'은 실존하는 지식의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으며,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 하기도 어렵다. 사람들의 삶에서 본능.조건반사.욕망 또는 잠재 의식이라 불리는 '생물적 지식'과 풍속.습관.전통 또는 미신이라 불리는 '사회적 지식'은 얼마나 중요한가. 그런 '드러나지 않은 지식'은 개인들과 사회들의 모습과 움직임을 결정하는 데서 흔히 '드러난 지식'보다 훨씬 큰 역할을 한다.

그런 전제 아래 지식의 범위를 다루기 좋도록 좁혀서 사람들의 모든 지적 활동들을 지식으로 보면 지식은 종교적 지식.예술적 지식, 그리고 과학적 지식으로 대별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과학적 지식은 다른 두 지식보다 훨씬 빠르게 발전했고 사람들의 삶에서 차지하는 자리를 줄기차게 늘려왔다. 이런 사정은 과학이 가설들을 현실에 적용해서 진위를 가리는 검증의 과정을 거치기 때문이다. 그런 '과학적 방법론' 덕분에 과학적 지식은 검증을 거쳐 보다 나은 지식들로 끊임없이 대치되고 단편적 지식들은 점점 커다란 유기적 체계로 짜여질 수 있다. 다른 두 지식들은 그렇게 진화하지 못한다.

종교적 지식은 본질적으로 신념의 확실성에 바탕을 두었으므로 변화의 여지가 없다. 그래서 자신이 태어난 세상의 틀 속에 갇힌다.

지금 중요한 종교들은 모두 수천 년 전의 지식에 바탕을 두었다. 유대교.기독교.이슬람교(회교)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세계관을 아직 지녔고, 힌두교와 불교는 인더스 문명의 틀을 그대로 지녔으며,도교는 중국 은(殷)문명의 자취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예술적 지식도 꾸준히 자라날 토대를 지니지 못했다. 예술의 사조와 관행은 끊임없이 바뀌지만 예술적 지식이 보다 높은 체계로 상승하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그러면 과학적 지식의 이런 발전과 우세는 앞으로 사람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인류의 경험은 과학적 지식의 발전과 우세가 사람들의 삶에 큰 혜택을 주었음을 증언한다. 어떤 기준으로 평가하더라도 사람들은 지금 과거보다 훨씬 잘 살고 있다.

그리고 과학적 지식이 지금까지와는 달리 앞으로는 사람들에게 큰 혜택을 주지 못하리라고 믿을 근거는 물론 없다. 실제로 미래에 관한 예측들은 거의 모두 사람들이 지금보다 훨씬 잘 살리라고 전망한다.

그러나 과학적 지식에 바탕을 둔 현대 문명이 모든 사람들로부터 늘 사랑을 받는 것은 아니다. 현대 문명은 너무 복잡하고 거대해서 그것의 전모를 살피고 작동 원리를 이해하는 데는 높은 지적 능력과 많은 과학적 지식이 필요하다. 자연히 현대 문명을 제대로 이해하고 고맙게 여기는 사람들은 드물다.

많은 사람들은 어렵고 복잡하고 애매하고 습득에 시간이 걸리는 과학적 지식보다는, 특히 무척 어렵고 불투명하고 흔히 반직관적이며 체계적이지도 못한 사회과학 지식들보다는, 훨씬 간단하고 명쾌한 세계관을 제시하는 지식들을 받아들인다.

그런 사람들이 현대 문명에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이상하지 않다.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폰 하이에크(1974년 노벨경제학상 수상)가 지적한 것처럼 사람들은 자신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현대 문명을 미워하고 두려워하며 그것을 파괴하려는 충동을 느낀다.

미국의 '9.11 참사'는 그런 파괴적 충동이 얼마나 끔찍한 일로 구체화될 수 있는가 잘 보여주었다. 그 참사는 아주 간단하고 명쾌하게 세계를 설명하는 종교적 지식을 신봉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현대 문명에 대해 극도의 증오를 품고 그 문명을 상징하는 나라의 상징적 장소들을 파괴한 사건이다.

여객기들을 납치해 빌딩들을 파괴한 사람들은 거의 모두 사우디아라비아의 중산층 지식인들로 이슬람회교의 원리주의 종파를 믿었다. 그 테러리스트들은 근년의 두드러진 테러리스트 집단들인 '적군파'나 일본의 '옴진리교파'와 아주 비슷한 풍토의 소산이다.

현대 문명에 대한 반감과 관련해 더 시사적인 것은 그 참사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그런 참사를 미국의 업보로 여기고 현대 문명의 구조가 그런 테러를 낳았다고 주장했다. 옳고 그름을 떠나서 그런 주장은 현대 문명에 대한 반감이 아주 널리 퍼졌음을 잘 보여준다.

이런 사정은 이념적 갈등이 앞으로도 여전히 치열할 것임을 가리킨다. 각종 층위의 사회들은 생명체들과 마찬가지로 정보처리 체계들이며, 이념은 본질적으로 그런 사회들의 정보처리에 관한 견해를 뜻한다.

그런 이념적 지형에서 분수령 노릇을 할 것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사회가 개인들에게 허여하는 자유다. 그래서 이념의 스펙트럼에서 한쪽엔 개인들의 정보처리를 한껏 허용하자는 자유주의가 자리잡고, 다른 쪽엔 개인들의 정보처리에 사회가 많이 간여하고 통제해야 한다는 전체주의가 자리잡을 것이다.

자유주의자들은 한 사회에서 정보는 대부분 개인들이 지녔고 정보처리도 대부분 개인들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그렇게 개인들에게 분산된 정보들을 한데 모아 처리해서 다시 배분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아주 어렵고 경제적으로 무척 큰 비용이 든다. 따라서 개인들의 활동의 집합인 시장이 정보처리에서 정부보다 훨씬 효율적이다.

1920년대에 시작돼 70여년 동안 지속된 거대한 '공산주의 실험'은 이 점을 극적으로 보여주었다. 덕분에 적어도 경제 분야에선 전체주의는 논파되었고, 자유주의는 거의 도전받지 않는 이념이 되었다.

그러나 다른 분야들에선 자유주의의 세력은 그리 크지 않다.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보통 사람들로선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하고 거대해진 현대 문명은 늘 전체주의적 여론이 형성되도록 한다.

그리고 현대의 민족국가들은 자신이 완벽하고 자족한 정보처리체계가 되기를 열망하므로, 그들은 개인들의 정보처리에 간섭하려는 전체주의적 성향과 그렇게 할 수 있는 기구들을 갖추었다.현재 매춘.동성애.마약 사용.낙태.유전자 조작과 같은 사회적 논점들에서, 개인들의 자유와 선택을 한껏 보장하자는 자유주의적 주장은 소수이고 엄격한 사회적 규제를 계속 하자는 전체주의적 주장이 압도적으로 우세하다.

자유주의와 전체주의는 유전자 조작을 둘러싸고 특히 거세게 겨룰 것이다. 유전자가 생명체들의 가장 기본적인 정보처리 장치이므로 이런 겨룸은 상징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무척 중요하고 가까운 미래의 지적 풍토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

지금 거의 모든 사람들이 유전자 조작으로 인류의 정체성이 위협을 받는다고 느끼며, 다른 사회적 논점들에서 자유주의적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이 문제에 대해선 아주 보수적인 태도를 보인다. 지금 유전자 조작을 엄격하게 통제하라는 목소리는 아주 높다.

유전자 조작에 관한 최종적 판단은 개인들이 지니는 것이 합리적이고 사회의 역할은 '지식에 바탕을 둔 조언 (informed advice)'에 그쳐야 한다는 자유주의적 주장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과학과 기술은 끊임없이 발전하고 과학적 지식은 꾸준히 확산될 터이므로 과학적 지식의 자유로운 유통과 이용을 주장하는 자유주의는 앞으로도 가장 중요한 이념일 것이다.

그러나 현대 문명이 점점 더 복잡하고 거대해지면서, 그것에 대한 반감 또한 커질 것이고 그런 반감에 바탕을 둔 전체주의적 성향도 따라서 커질 것이다.

우리가 지금 바랄 수 있는 것은 과학적 지식이 사회 문제들을 푸는 데 좀 더 많이 이용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무지와 편견이 줄어들고 좀 더 너그러운 사회가 나올 것이다.

복거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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