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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제역 방역 구멍은 결국 사람이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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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외국을 여행한 농장주와 외국인 근로자. 방역당국이 17일 지목한 구제역 바이러스의 유입 경로다. 국립수의과학검역원은 이런 결론을 내리기까지 광범위한 역학조사를 벌여 왔다. 조사대상에 오른 농가만 3159곳에 이른다. 검역원은 일단 두 지역의 구제역 바이러스가 전혀 다른 출신 성분을 가진 것으로 잠정 결론 지었다.

지난 1월 경기 포천에서 발생한 구제역 바이러스는 농장에서 일하는 외국인 근로자의 몸에 묻어 들어왔다. 동북아 출신인 이 근로자는 지난해 10월 말 입국해 곧장 이 농장에 취업했다. 이어 11월 23일엔 그의 고향에서 옷가지와 신발이 담긴 우편물도 배달됐다. 하지만 별다른 소독은 하지 않았다.

강화에선 농장주가 문제였다. 그는 3월 중순 중국 장자제를 여행한 뒤 소독도 하지 않고 곧바로 축사로 들어갔다. 검역원 역학조사위원회 김봉환 위원장은 “바이러스의 유전자 조사 결과 포천은 동북아 지역(A형)과 97.6%, 강화는 중국 동남부(O형)와 99% 유사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수입 경로는 달라도 국내 전파 과정은 비슷했다. 축산업체 차량 한 대가 여러 농가를 돌아다니며 사료를 팔거나 우유를 수거해 오는데, 이 과정에서 차량 또는 운전자에 묻은 바이러스가 퍼진 것이다. 농장주들끼리 잦은 모임도 구제역 전파에 한몫했다. 경기 포천의 농장주들은 구제역이 발생하자 거의 매일 모여 대책회의를 했다. 김포의 젖소 농장주는 강화지역 농장주와 같은 조합 소속이었다.

큰 불은 잡혔고 불이 난 경위도 파악됐지만 안심하기엔 이르다. 조사를 통해 방역망에 구멍이 숭숭 뚫려 있는 게 확인됐기 때문이다.


우선 외국에서 바이러스를 묻혀 오는 데엔 속수무책이다. 익명을 원한 농식품부 관계자는 “자기 발로 돌아다니는 것을 막을 수도 없고 답답하다”고 한숨을 쉬었다.

정부는 일단 축산농장주나 가족이 위험 지역을 여행하면 입국 심사대에 자동 통보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도착 즉시 소독을 하고, 여행 후 5일간 축사 출입을 금지키로 했다. 이를 어겼다가 구제역이 발생하면 살처분 피해보상에서 제외된다.

더 큰 문제는 바이러스의 생존기간이 알려진 것(최장 2주)보다 길다는 점이다. 포천의 경우 해외에서 온 바이러스가 가축 몸에 들어가기까지 40일, 강화는 25일이 걸렸다.

최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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