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근로자의 몫을 축낸 민노총의 ‘노동기생충’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8면

실업급여는 ‘눈물의 월급’이다. 평소 봉급에서 꼬박꼬박 뗀 고용보험료가 기금이다. 어쩔 수 없이 일자리를 잃었을 때 받는 ‘비상금’이다. 액수도 기껏 연명(延命) 차원이다. 길어야 18개월, 그나마 근속 연수가 짧으면 얼마 받지도 못한다. 이런 것을 민주노총 간부들이 부정하게 타먹었다가 형사고발 됐다. 민주노총 산하 연맹에서 월급을 받으면서 노동청에 실업급여도 신청해 이중으로 챙겼다는 것이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더구나 여느 노조간부도 아니다. 민주노총의 부위원장, 그리고 산하 노동연맹의 위원장과 조직부장이 연루됐다. 실업급여가 무엇이며 어떤 돈인지 누구보다 잘 아는 노동전문가들의 조직적 소행이란 점에서 더욱 분노가 치민다. 자신들이 보호해야 할 노동자들의 몫을 늘리기는커녕 오히려 축낸 ‘노동기생충’이 아닌가 말이다.

노동운동의 원동력은 도덕성과 명분이다. 가장 강력한 투쟁 수단인 ‘파업’도 지도부의 도덕성과 명분에 흠결(欠缺)이 있으면 힘을 얻기 어렵다. KT 노조 등 대기업 노조가 줄줄이 탈퇴하면서 민주노총의 세력이 약화된 것도 투쟁방식을 포함한 지도부의 도덕성에 기인한 바 크다. 성폭력 사건 은폐 조작으로 위원장을 포함한 지도부 9명 전원이 총사퇴한 것이 불과 1년여 전이다.

그래서 지난 3월 출범한 민주노총 새 집행부는 변신의 상징으로 ‘쇠파이프’를 내려놓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하다. 21세기의 노동운동은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야 한다. 복수노조가 그렇고, 경비의 자체 충당도 그렇다. 그런 점에서 비록 기형적으로 도입된 ‘타임오프’이지만, 노동계가 이를 도덕성 회복과 노동운동 선진화의 계기로 삼길 기대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노조전임자 경우다. 지나치게 많으면 동료 노동자의 부담이다. 따지고 보면 노동자들의 생산성과를 나누고, 받을 몫을 떼어낸 것이다. 이를 회사로부터 받아낸다는 논리는 조삼모사(朝三暮四)식의 노조경비 출처 흐리기 아닌가. “노동청에서 실업급여를 빼냈지, 노동자 몫은 아니다”는 ‘노동기생충’의 궤변(詭辯)과 무엇이 다른가. 이런 차원에서 민주노총은 ‘타임오프’ 논의 결과를 전향적으로 수용해야 한다. 그것이 당당하고 시대흐름에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