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윈도] 미국 연출의 '비대칭 전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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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무장 장갑차가 매복해 있는 다리를 건너 펜타곤(미 국방부청사) 정문으로 들어서면 긴 복도가 나온다. 양쪽 벽에는 미군의 무용(武勇)을 알리는 사진.그림이 도열해 있다.

복도 중간쯤에 브리핑 룸이 있다.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과 리처드 마이어스 합참의장이 매일 기자들에게 전황을 설명하는 곳이다. 기자들이 정면으로 응시하는 벽 오른쪽 상단에 비디오 스크린이 있다.

여기서는 가끔 가공스런 리얼리티 비디오가 상영된다. 미군의 아프가니스탄 정밀폭격을 인공위성이 촬영한 것이다. 십자(十字)의 조준선에 이어 한줄기 레이저 같은 것이 비친다. 미사일이다. 섬광과 연기구름 속에서 목표물의 조각이 사방으로 튄다.

개전 초기 영상에 나타난 목표물의 대부분은 레이더.비행기.건물 같은 무생물이었다. 하지만 요즘엔 병사들이 탄 장갑차.트럭 행렬도 등장한다. 인공위성의 렌즈 속에서 탈레반군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버튼을 눌러 적군의 비행기를 맞추는 전자 게임 같다.

게릴라전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지금까지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철저한 불균형의 전쟁이다. 미군은 하늘을 장악했고 인공위성으로 들여다 본다. 지상의 탈레반은 참호를 파고 숨어도 폭격에 견디질 못한다. 토마호크 미사일 대 소총의 전쟁이다.

렌드 연구소 연구원으로 워싱턴에 머물고 있는 김희상(金熙相) 전 국방대학총장은 이를 가리켜 '비대칭의 전쟁'이라고 했다. 비대칭성이 가장 극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사상자 숫자다.

군사전문가들은 숨진 탈레반 병사와 알 카에다 대원이 1천여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한다. 반면 미국의 전투 사망자는 공식적으론 아직 한 명도 없다. 미군측에선 여섯 명이 죽었는데 헬기.해상 사고로 인한 것이다.

미국은 총알을 주고 받는 일은 북부동맹에 맡기고 있다. 탈레반은 칸다하르마저 빼앗기면 산악지대로 도주해 옛날 소련을 괴롭혔던 게릴라전으로 미군에게 복수하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하지만 유엔의 평화유지군이 배치된다면 미군 자체의 희생은 크지 않을 것이 확실하다.

세계는 미국이 연출하는 '비대칭의 전쟁'을 목격하고 있다. 미국의 가공할 전쟁 능력이 제2의 이라크나 탈레반이 되려는 일부 국가의 모험을 막을 것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김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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