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문학] 다케다 이즈모 '주신구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7면

우리가 『춘향전』을 매년 새로운 영화나 TV 드라마.마당놀이.연극.소설 등으로 즐기며 웃고 눈물을 흘리듯 일본 국민들은 『주신구라』를 보고 그렇게 한다.

『춘향전』에도 여러 판본(版本)이 있듯 『주신구라』도 80여 이본(異本)이 있고 오늘도 여러 작가들에게 의해 재창작돼 무대나 극장에 올려지고 소설로 출간되고 있다. 최근 출간된 판본은 '주신구라 작품군'의 원류라 할 수 있는 『가나데혼 주신구라(名手本忠臣)』의 국내 초역이다.

『주신구라』는 1702년 12월 14일 주군(主君)을 위해 복수한 실제 사건을 작품화한 것. 1701년 정월 쇼군(將軍) 도쿠가와 쓰나요시(德川綱吉)는 천황에게 축하의 사절을 보냈고 천황은 이에 대한 답례로 칙사를 보내 왔다.

그 칙사를 대접하는 역을 맡은 아사노 나가노리가 그를 능욕했다는 이유로 같은 칙사인 기라 요시나카를 칼을 빼 해치려 했다. 쇼군이 거주하는 곳에서 칼을 빼서는 안되는 법에 의해 쇼군은 아사노에게는 당일 할복할 것을 명한 대신 기라는 무죄 방면했다.

졸지에 주군을 잃고 집안과 영지(領地)를 몰수당한 아사노의 사무라이들은 낭인이 돼 주군의 복수만을 위해 절치부심하다 이듬해 12월 14일 기라의 저택을 급습, 그의 목을 베는데 성공한다. 당시 여론은 주군에 대한 충성과 그 의협심을 높이 샀으나 쇼군은 거기에 가담한 사무라이 46명 전원의 할복을 명했다.

무사로서 명예롭게 죽은 그들은 주군의 묘 옆에 나란히 묻혔다. 법을 어긴 폭도였으나 이들은 충(忠)과 의(義)의 사표로 일본 국민들에게 각인됐다.

주군의 할복으로 시작되어 주군의 복수를 위한 사무라이들의 와신상담(臥薪嘗膽), 치밀하고 과감한 복수의 결행, 마지막의 여한없는 집단 할복 등 사건 자체가 드라마틱하다.

거기에 일본의 집단적 정신과 정서를 가장 잘 반영해 이 사건 직후부터 작품화되기 시작하다 1748년 다케다 이즈모 등 당대 최고작가 3인의 공동창작으로 『가나데혼 주신구라』가 완성된다.

이 작품에는 오로지 주군을 위해 목숨을 건다는 일본의 사무라이 정신의 원형이 충(忠)으로 감싸여 있다. 그리고 한번 목표가 서면 전원이 한결같이 한다는 일본의 집단주의적 성향이 의(義)로 승화돼 있다.

거기에 10대에서 60대에 이르는 무사 46명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 중 한 사람은 꼭 자기 자신일 듯하게, 그리고 상인 한명도 그 무사집단에 끼어넣어 의리 있는 상도(商道)를 발휘하게 하는등 일본의 전계층을 사로잡을 수 있게 꾸몄다.

이 작품을 번역한 최관(고려대 일문과 교수)씨는 "일본인의 마음과 일본 사회의 원리가 담겨 있는 그들의 명작을 모르고 어떻게 한.일문제를 해결하고 우호적 미래관계를 도모할 수 있겠는가"며 "무사정신과 서민정서가 그대로 드러난 일본의 국민문학인 이 작품의 일독을 권한다"고 밝혔다.

이경철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