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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여성 암환자 외모관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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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암치료로 머리카락도 다 빠졌는데, 무슨 화장이예요.” 망설이던 김해경씨도 막상 눈썹을 그리고 입술을 칠하니 입꼬리가 올라간다. “예쁘네요.” [최정동 기자]

2007년 3월 14일. 달콤한 사탕과 함께 사랑을 고백받는다는 화이트데이에 신경옥(45)씨는 유방암 3기를 진단받았다. 보름 뒤 절제수술을 받았지만 ‘잘 이겨낼 수 있으니 조금 더 힘을 내자’며 자신을 다독였다. 그런 그녀도 항암치료는 견디기가 쉽지 않았다. 4월 20일 그녀의 일기장엔 이렇게 쓰여 있다. “수술할 때까지는 몰랐는데 항암치료가 시작되니 오히려 더 힘들다. 머리가 빠지기 시작하고 피부색도 검게 변했다. 오늘은 처음으로 눈물이 나왔다. 이제야 내가 암이라는 무서운 병과 싸우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몸이 아픈 것보다 여자로서의 아름다움을 잃어가는 게 더 두려웠던 신씨는 투병 중에도 매일 아침 예쁘게 화장을 하며 자신감을 가지려 노력했다. 희망과 용기를 잃지 않아야 암과 싸워 이길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지금 암환자를 위한 희망 전도사가 됐다. 지난 3년간 아모레퍼시픽 ‘메이크업 유어 라이프(Make up your life)’ 캠페인에 3년째 자원봉사자로 참여해 다른 여성 암환자의 외모관리를 돕고 있는 것.

항암제, 손발톱·위장점막·백혈구 공격

암세포를 없애기 위한 방법은 크게 세 가지. 수술·항암제·방사선치료다. 치료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지만 이들로 인해 외모가 변한다. 몸에 흉터가 남고 머리카락이 빠지며, 손발톱과 얼굴이 건조해지고 검어진다. 항암치료의 후유증은 심각하다.

특히 항암제의 부작용이 크다. 암세포는 정상세포에 비해 성장속도가 매우 빠르다. 항암제는 이렇게 빠르게 자라는 암세포를 공격하도록 만들어졌다. 문제는 항암제가 정상세포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

중앙대병원 혈액종양내과 이상재 교수는 “항암제는 빨리 자라는 머리카락과 손발톱, 재생능력이 좋은 구강이나 위장 점막·적혈구·백혈구 등을 공격하기 때문에 탈모가 진행되고, 입안이 헐며 설사를 한다”고 설명했다.

방사선 치료, 피부 벗겨지고 물집 생겨

항암제는 피부도 망가뜨린다. 이 교수는 “위암이나 대장암처럼 소화기계 암에 쓰는 항암제(5FU)를 투입하면 일시적으로 피부가 검어진다”고 말했다. 또 특정 암세포 분자만 달라붙어 공격하는 표적치료제는 여드름과 같은 피부발진을 유발한다.

수술이나 항암제보다는 덜하지만 방사선치료도 부작용을 초래한다. 강남세브란스병원 방사선종양학과 이익재 교수는 “방사선치료를 받은 부위가 마치 햇볕에 탄 것처럼 검붉어지거나 피부 껍질이 벗겨지고 물집이 생기기도 한다”고 말했다. 머리 쪽에 방사선을 쏘였다면 머리카락이 빠질 수도 있다.

“암 자체보다 탈모가 더 싫었다” 고백

2006년 유방에서 시작된 암세포가 폐와 간으로 전이되는 바람에 항암제를 일곱 가지나 써야 했던 김보화(가명·43)씨. 까무잡잡하게 변한 얼굴을 거울로 이리저리로 살펴보더니 이내 고개를 돌린다.

김씨는 “원래 아무것도 안 발라도 윤기 나는 건강한 피부였는데 이제는 아무리 파운데이션을 발라도 거무튀튀하니 속상하다”고 말했다. 세포 독성물질을 견디지 못한 건 피부뿐이 아니다. 병원을 들락거리는 동안 머리카락이 빠지고 다시 나기를 수차례 반복했다. 김씨는 “아무리 가발과 두건·모자를 써도 머리카락이 없는 게 제일 스트레스”라며 “어떨 때는 암환자라는 사실보다 머리카락 빠지는 게 더 싫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삼성서울병원 암교육센터 조주희 센터장이 지난해 여성 암환자 403명을 조사한 결과, 여성 암환자의 대부분이 항암치료로 변한 외모에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암환자의 90%가 피부손상과 탈모 등 변화된 외모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답했다. 달라진 자신의 모습을 거부하는 것은 물론 가족 앞에서도 위축된다고 했다. 사회활동에 점차 제한이 생기고, 배우자와의 관계가 어색해진다.

외모변화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환자일수록 우울증에 걸릴 위험도 더 높다. 항암치료 중인 환자의 68%가 심한 피부변화를 느끼고 있었으며, 이들 중 90% 이상은 임상적 우울 집단에 속했다.

외모관리 교육 3년 … 올해 2000여 명 혜택

갑작스러운 변화로 상처받은 여성 암환자를 돕기 위해 아모레퍼시픽이 ‘메이크업 유어 라이프’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항암치료 중에 피부관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화장은 언제부터 가능한지, 모자와 두건은 어떻게 쓰면 예쁠지 등 실제의 외모관리법을 알려 투병 중인 환자가 자신을 아름답게 가꾸고 심적 고통을 이겨낼 수 있도록 지원한다.

3년 전 시작한 이 캠페인을 통해 현재까지 총 3480명의 여성 암환자가 미소를 되찾았다. 올해는 지역과 수혜 대상을 두 배로 늘렸다. 서울과 수도권, 부산·대구·광주 등 50개 지역병원에서 상·하반기로 나눠 2000여 명을 대상으로 진행한다.

조 센터장은 이 같은 외모관리 교육이 여성 암환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평가했다. 2차 설문에 응한 209명을 최종 분석한 결과, 피부변화로 쇼핑이나 외식 등 외출을 꺼렸던 환자 수가 교육 전(44%)보다 줄어든 것(33%)을 확인했다.

조 센터장은 “항암치료로 인한 외모변화 스트레스는 치료 5년이 지나도 지속적으로 암환자의 삶의 질을 떨어뜨린다”고 말했다. 그는 또 “외모관리 교육은 환자가 항암치료 과정에서 겪는 부정적 변화에 올바르게 대처하도록 돕기 때문에 스트레스와 우울증 발생을 낮추고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긍정적 효과가 있다”고 분석했다.

이주연 기자



[인터뷰] ‘메이크업 유어 라이프’ 캠페인 … 아모레퍼시픽 서경배 대표이사
“외모 변화로 고통받는 여성 암환자에게 자신감 드려요”

“여성 암환자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아모레퍼시픽의 ‘메이크업 유어 라이프’ 캠페인은 그렇게 시작됐다.

항암치료를 받으면 피부가 나빠지고 머리카락이 빠지는 등 갑작스럽게 변한 외모로 여성 암환자들이 자신감을 상실하고 고통받고 있는 데 착안한 것이다.

여성 암환자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유방암을 예방하고 알리는 ‘핑크리본’ 캠페인을 통해서다. 아모레퍼시픽은 2000년 한국유방건강재단을 설립하고, ‘핑크리본사랑 마라톤’과 ‘핑크 투어’ 등 다채로운 행사를 통해 유방건강에 대한 국내 여성의 인식을 높이는 데 앞장서왔다.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체가 이토록 여성 암에 관심을 갖고 대국민 캠페인을 벌이는 이유가 뭘까.

아모레퍼시픽 서경배(사진) 대표이사는 “여성의 건강한 아름다움을 지켜드리는 것이 기업 최고의 가치이기 때문”이라며 “나눌수록 더 커진다는 회사의 이념을 앞세워 우리 사회가 더 건강하고 아름다워지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1945년 창립한 아모레퍼시픽은 여성과 어린이, 문화와 환경 등 사회 전반의 사회공헌 운동에 기여해왔다. 하지만 무엇보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를 향상시키는 데 공헌한 바가 크다. 특히 1960년대 초 시작한 화장품 방문 판매는 전쟁 미망인과 여성 가장이 식솔을 보살피고 가정을 지키는 데 훌륭한 기반이 됐다.

이들은 오늘날 아모레 카운슬러란 이름으로 아모레퍼시픽이 기업 이익을 사회에 환원하고, 소외된 이웃을 돌보는 나눔 활동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올해 메이크업 유어 라이프 캠페인에만 총 500명의 아모레 카운슬러가 자원봉사자로 참가했다. 이는 120명이 참여했던 2008년보다 네 배나 늘어난 수치.

서 대표이사는 “아모레퍼시픽 캠페인에 대한 아모레 카운슬러와 여성암 환자, 병원계의 관심과 격려가 해마다 높아져 감사할 따름”이라며 “자신의 몸에 대한 사랑과 긍정을 통해 모든 여성이 건강한 아름다움을 추구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글=이주연 기자
사진=최정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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