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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아침] 김수영 '죄와 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TV 드라마는 말할 나위도 없고

꾸며낸 이야기가 모두 싫어졌다

억지로 만든 유행가처럼 뻔한

거짓말을 늘어놓는 글도 넌더리가 난다

차라리 골목길을 가득 채운

꼬마들의 시끄러운 달음질과

참새들의 지저귐 또는

한밤중 개짖는 소리가 마음에 든다

가장 정직한 것은 벽에 걸린 달력이고

-김광규(1941~) '달력'

가장 정직한 것은 가장 단순하다. 가장 단순한 것은 우리를 절망하게 한다. 숫자 뿐인 달력과 그 달력이 걸린 벽처럼. 흰색이나 죽음처럼. 우리가 마침내 절망할 때까지 시간을 끌어보라고 TV가 있고 이야기가 있고 유행가가 있다. 그러나 한밤에 개 짖는 소리를 밖에 던져놓고 달력을 쳐다보고 앉아 있어 보라. 끝에 가서는 달력이 이긴다는 것을 알리라.

김화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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