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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 장갑 없이 컴퓨터 조작하는 기술도 곧 나올 것”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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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호 11면

“묻기는 쉽지만 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던질 때,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오는 경우가 있어요. 15년 전에도 그랬죠. 왜 새로운 인터페이스가 없을까. 여기서 시작해서 열심히 생각하고 열심히 작업하다 보면 더 나은 해결책을 발견할 수도 있죠. 또 스스로를 최초의 고객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내가 쓰고 싶은데 없는 것을 만드는 것이죠.”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 기술 상용화한 존 언더코플러

SBS 주최 서울디지털포럼에 연사로 내한한 존 언더코플러(43·오블롱 인더스트리즈 수석과학자) 박사의 말이다. 13일 강연 직후 중앙SUNDAY와 따로 만난 자리에서 ‘과학자로서 혁신적인 새 아이디어를 얻는 법’을 물었더니 “어려운 질문”이라는 말과 함께 들려준 얘기다. 그의 이름은 낯설어도 그가 개발한 신기술은 우리에게 익숙하다. 2002년 개봉한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 등장했기 때문이다. 주인공 톰 크루즈가 허공에서 마술을 부리듯 특수장갑을 낀 두 손만으로 수많은 동영상을 컴퓨터에서 불러내 활용하는 장면이 바로 그것이다. 이 기술을 그는 1990년대 중반부터 MIT 미디어랩에서 연구용으로 개발해왔다. 영화에 선보인 데 이어 4년 전에는 오블롱 인더스트리즈(이하 오블롱)라는 회사를 공동 창립해 상업적으로 실용화했다. 이름하여 ‘g-스피크(g-speak)’라는 시스템이다.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 톰 크루즈가 손동작으로 동영상을 검색하는 장면. 이 기술의 개발자 언더코플러 박사(오른쪽)는 이를 상업적으로도 실용화했다. 신인섭 기자

영화에서 보여준 대로 이 시스템의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마우스나 키보드가 아니라 사람의 손이 인터페이스, 즉 컴퓨터 같은 기계와 사용자를 연결하는 장치 역할을 직접 하는 점이다. 언더코플러 박사는 “사람의 손은 가장 정교한 도구”라고 강조했다. MIT 미디어랩에서 처음 연구를 할 때부터 갖고 있던 생각이라고 한다. “저는 이시이 히로시 교수가 이끄는 ‘탠저블 미디어 그룹’이란 연구팀의 일원이었어요. 그룹 모두가 실제 사물을 인터페이스의 일부로 만들 필요가 있다는 아이디어로 작업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특히 손을 자유로이 쓰는 것, 디지털이 아닌 작업을 할 때처럼 손을 이용하는 것이 중요한 측면이었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정보를 직접 손으로 처리하는 연구를 하게 된 거죠.” 설명을 듣자니 언뜻 가상현실을 현실로 가져와서 이 전부를 실제 현실로 만든다는 얘기 같았다. “바로 그렇습니다. 가상현실의 안팎을 뒤집는 거죠. 사람들이 컴퓨터 안으로 들어가는 게 별로 유용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말하자면 사람들이 컴퓨터를 사용할 때 마치 실제 세계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여기곤 하잖아요. 그와 반대로 컴퓨터가 실제 세계로 나와서 작업을 하게 만들고 싶은 거죠.”

이 쉽지 않은 개념을 이해하는 데는 앞서 강연에서 그가 보여준 동영상 중 하나가 도움이 될 듯하다. MIT 미디어랩 시절의 연구 가운데 하나인데, 시시각각 달라지는 햇빛에 따라 건축물의 그림자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실내에서 시뮬레이션하는 내용이다. 흔히 예상하는 대로라면 이런 시뮬레이션은 온갖 수치를 컴퓨터에 입력하고 그 결과물을 컴퓨터 화면을 통해 보여주게 마련이다. 그런데 이 동영상에서는 달랐다. 탁자처럼 수평으로 놓인 스크린 위에 건축물 모형을 올려놓고, 그 한 곁에 있는 시계바늘 모양의 장치를 손으로 움직이면 그에 따라 그림자가 달라진다. 건축 모형이 속한 물리적 실제 공간과 그림자를 구현하는 디지털 가상 공간이 마치 하나로 연결돼 작동하는 듯 보였다.

언더코플러 박사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 이어 ‘헐크’ ‘이온플럭스’ ‘아이언맨’ 등 여러 영화에도 기술자문으로 참여했다. SF 영화에 관심이 많았던 걸까. “SF 영화에 특별히 관심이 많지는 않아요. 대신 모든 영화에 관심이 많죠. 우리 회사 사람들은 다들 영화를 아주 좋아합니다.” 그렇다고 영화에 대한 관심이 과학자로서의 관심과 별개인 것은 아니다. “영화는 아이디어를 실험해 볼 수 있는 장이에요.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컴퓨터와 인터페이스에 대한, 그밖에 많은 기술에 대한 아이디어의 원형을 구현해 볼 수 있는 기회였죠.” g-스피크는 미국 내 대학 세 곳에도 설치돼 있다. 각각 공학·디자인·영화 관련 학과다. “우연히 그렇게 된 게 아니에요. 공학과 디자인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당연히 둘 다 중요하죠. 또 영화는 디자인과 공학에서 생각하는 것에 체계적인 방법을 확립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됩니다.”

손동작으로 컴퓨터의 정보를 불러오고 처리하는 장면은 최근 개봉한 ‘아이언맨2’에도 등장한다. 언더코플러 박사가 직접 참여한 영화는 아니어도 그가 개발한 기술을 연상시킨다. 어쩌면 8년 전 ‘마이너리티 리포트’가 선보인 것보다 더 발전된 듯 보이기도 한다.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톰 크루즈가 다소 거추장스러울 수 있는 특수장갑을 끼고 있는 것과 달리 ‘아이언맨2’의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맨손인 것도 그렇다. 이를 지적하자, “장갑이 필요 없는 기술도 개발 중”이라는 말이 나왔다. 인터뷰에 함께 자리한 공동창업자 퀸들러 크레이머(오블롱 CEO)는 “현재 대용량 데이터를 다루는 기업 고객들은 장갑을 쓰고 있지만 미래에 누구나 g-스피크를 쓰게 될 때는 물론 장갑이 없어져야 한다”며 “이 문제를 해결하는 연구개발 결과가 머지않아 나올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누구나 쓸 수 있는 인터페이스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컴퓨터만이 아니라 휴대전화·게임기·자동차계기판 등 화면이 있는 장비에 두루 통하는 인터페이스, 화면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면 쉽게 반응하는 인터페이스를 지향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대중적으로 활용하기에는 아직 g-스피크는 상당히 고가의 시스템이다. 현재 g-스피크를 쓰는 고객들은 모두 기업들로, 시스템 구축·관련 소프트웨어 라이선스 등 오블롱에 지불하는 비용이 최저 100만 달러에서 시작한다고 한다. 크레이머는 기업 고객의 이름을 상세히 밝히기 꺼린 대신 “물류나 네트워크 관리, 재무 관리, 원유 탐사 등 다방면으로 쓰이고 있다”며 “항공기 제조업체인 보잉은 엔지니어들이 디자인 개발·시험 등에 쓰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또 “가격을 낮추기 위한 연구개발도 진행 중”이라며 “올 하반기에는 좀 더 저렴한 9만~10만 달러대의 회의실용 시스템을 내놓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 시스템은 ‘브링 유어 오운 툴(Bring your own tool)’이라고 이름을 붙인 대로, 참석자들이 갖고 간 각종 장비에 담긴 정보를 손동작으로 회의실의 대형 화면에 띄우거나 다른 회의실과 공유할 수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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