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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책에 마구 낙서하세요, 재미있는 생각 펑펑 솟아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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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에르베 튈레의 디자인 수업
에르베 튈레 글·그림
ROSAHAN 옮김
톡, 64쪽, 2만원

아이들에게 낙서할 거리를 던져놓은 책이다. 책의 원제 ‘A toi de gribouiller’에 담긴 뜻 ‘이제 네가 낙서할 차례야’를 충실히 반영했다.

서울국제도서전(12∼16일) 참석차 방한한 프랑스 작가 에르베 튈레(52)는 낙서 예찬론자다. “낙서는 상상력을 자극하는 행동이며, 감성과 지각이 드러나는 작업”이라면서 “하지만 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낙서가 금지되고 나쁜 일 취급받는 게 안타깝다”라고 말했다.

이 책은 작가의 그런 소신에 따라 아이들이 맘껏 낙서를 할 수 있도록 자리를 깔아준다. 예를 들면 이런 식. 괴물 그림을 잔뜩 그려두고 “괴물들이 보이지 않게 마구마구 덧칠해 줘. 그럼 더는 무섭지 않을거야”라고 주문했다. 그리고 구석에 있는 괴물 하나에 작가가 덧칠 시범을 보였다. ‘어, 진짜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막 한 덧칠이다. 빨강·파랑 굵은 크레파스로 마구 종이 위를 휘저어 놨다. 독자인 아이들도 용기백배, 자신의 에너지를 쏟아붓게 될 터다.

『에르베 튈레의 디자인 수업』은 ‘미완성’ 그림책이다. 불이 나 집이 활활 타오르고 있고, 소방관 아저씨들이 물을 뿌리는 모습을 아이들이 ‘낙서’로 완성해야 한다. 작가가 본보기로 끄적거려놓은 자유로운 낙서는 아이들에게 낙서할 용기를 부추긴다. [톡 제공]

꽃 그림도 그렇게 그린다. 꽃 자리를 비워둔 풀 그림을 그려놓고 “세상에서 가장 예쁜 꽃밭으로 만들어 보라”고 지시했다. 작가 역시 빨강 볼펜을 이용해 꽃 한 송이를 그렸는데, 마치 볼펜이 잘 나오는지 시험해본 듯한 꼴이다. 잘 그린 그림이란 틀이 절로 무의미해진다. “단순히 그림 그리는 기술을 가르쳐주는 건 원치 않는다”는 작가의 의도가 살아있는 설정이다.

튈레는 낙서를 하는 아이들의 심리도 예리하게 짚었다. “재미도 느끼지만 뭔가를 만들어낼 때 감수해야 하는 리스크도 느낀다”며 “하지만 그런 어려움을 극복하고 성취했을 때의 기쁨이 아이들의 기억 속에 오래 남는다”고 말했다.

튈레는 또 “어린이 독자들이 이 책을 접하면서 이 책을 벗어나기를 바란다”는 말도 했다. 작가의 의도를 뛰어넘어 더 다양한 가능성을 시도해보기를 바라는 속내다.

디자인을 전공한 뒤 광고회사 아트 디렉터, 잡지 일러스트레이터 등으로 활동했던 튈레는 1994년부터 어린이책 작업을 시작해 지금까지 30여 권의 그림책을 출간했다. 그 중 ‘색색깔깔’ 시리즈, 『10 곱하기 10』 등은 한국어판으로도 나왔으며, 지난해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세계 일러스트 거장전’에서 체험 공간 ‘감성 아틀리에’를 기획·구성해 국내 독자들에게 이름을 알린 바 있다.

 이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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