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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본 합작영화 '고' 관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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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8면

"당신네들 1, 2세대가 그렇게 궁상을 떠니까 우리들 세대가 아직도 때를 못벗는 거란 말이야."

"나는 나야. 더 이상 나를 좁은 곳에다 처박지 마. 너희들은 국가니 토지니 직함이니 인습이니 전통이니 문화니, 그런 것들에 평생을 얽매여 살다가 죽는 거야. 제길 나는 처음부터 그런 것 갖고 있지 않으니까 어디든 갈 수 있어. 언젠가는 반드시 국경을 없애버릴거야."

그것을 향해 '고'!

동포 3세 가네시로 가즈키(金城一紀.33)의 자전적 소설 'Go(고)'. 지난해 대중적인 소설을 대상으로 하는 나오키상을 수상해 화제를 모았었다.

일본 평단에서는 이양지.유미리.현월처럼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했던 이전의 동포작가들이 남이냐 북이냐의 정치적 선택, 자신의 정체성의 혼돈 등의 무게에 눌려 지나치게 무겁고 진지했던 반면 'Go'는 차별과 이데올로기에 대한 집착을 발랄하게 대상화했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심각한 것을 유머러스하게, 진지한 것은 기지에 넘치게, 딱딱한 것은 유연한 것으로, 이데올로기적인 것은 감각적인 것으로 환치해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특히 작가는 동포임에도 일본명을 그대로 사용함으로써 '신세대 동포'로서의 당당한 면모를 보여 주었다.

그는 또 조총련계 민족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 마쳤지만 북한 국적으로는 외국 여행을 할 수 있는 나라가 제한된다는 이유로 한국 국적으로 바꾸고 일본대학(게이오대학 법대)을 졸업한 자유분방한 인물이다.

그렇다고 그가 사회의식이 없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는 소설에서 "난 일본에서 태어났다. 소위 말하는 코리안 재패니즈. 난 일본인과 다를 게 없는데 놈들은 이렇게 부른다. 재일한국인. 돌겠군"이라며 자신이 겪는 어려움을 잘 인식하고 있다.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한 한.일합작 영화 'Go'가 탄생했다. 한국의 스타맥스가 제작비 20%를 대고 일본의 메이저사 도에이영화사가 나머지를 투자해 만든 영화 'Go'는 현재 일본에서 원작 못지않은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달 말 전국 1백50여개 극장에서 개봉해 첫 주말에만 50만명 정도가 보았을 정도로 성황이다.

한국에서는 오는 24일 개봉하는 이 영화의 감독과 배우.원작자가 부산영화제를 찾았다. 이들의 입을 통해 일본 젊은이들과 동포 3세들의 변화하는 의식들을 알아본다.

특히 일본의 아이돌 스타인 주연배우 구보쓰카 요스케(窪塚洋介.22)는 느낀 바가 많아 치렁치렁한 머리를 빡빡 밀었다고 밝혀 주목을 끌었다.

*** 원작자 가네시로 가즈키

동포작가들이 지나치게 무겁고 음침하게 재일동포 문제에 접근하는 게 싫었다. 재일한국인으로서 일본에 산다는 건 차별과 억압을 감수하는 힘든 일이다.

일본은 우리가 동화되든지 배척을 받든지 양자택일하라고 몰아대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이 어둡다고 해서 더 침울해지면 발전이 없다. 현실이 어두울수록 밝게 보고 밝게 대응해야 세계가 바뀐다고 본다.

이 영화를 제작할 때 조건을 하나 달았다. 반드시 일본 감독이 맡아야 한다는 거였다. 최양일씨 같은 동포감독이 만들면 또 어둡고 침울해진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영화에 만족한다. 일본 사람들도 이번 영화로 동포 문제에 관심을 가졌다는 사람이 많아졌고 특히 조총련계 민족학교를 영화에서 다룬 건 처음이다.

물론 소설에서와는 달리 민족학교를 부정적으로만 그린 건 아쉽다. 민족학교도 김일성 주석이 죽은 뒤 많이 바뀌어 개방적이고 긍정적으로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 주연배우 구보쓰카 요스케

이 영화에 정말 깊이 몰두했다. 주변에 재일교포 친구들이 있지만 한결같이 밝아서 이런 고민이 있는 줄은 몰랐다.

영화에서 민족이나 국가의 경계 같은 건 중요치 않고 '나는 나'로서 성장한다는 부분에 끌렸다. 영화를 하면서 나를 알아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일본에서도 한국문화나 사회를 다룬 프로그램이 늘었다. 그것들을 보면서 한국 청년들은 역사나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고 특히 남자들은 의무적으로 군대에 갔다 와서 그런지 자기 정체성이 분명하다는 느낌을 받곤 한다.

일본 젊은이들은 그런 면에서는 생각이 얕은 편이다. 영화 'Go'가 그런 의미에서 일본 청년들이 성숙하는 계기가 된다면 좋겠다.

이 영화 끝나고 머리를 빡빡 밀었다. 뭔가 심경에 변화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세계에 대해서, 우리를 둘러싼 환경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살아왔다는 반성이 들었다.

*** 감독 유키사다 이사오

일본에서 이 영화가 인기를 끄는 이유는 속도감이 있고 유머가 많기 때문이라고 본다. 청춘영화의 틀로 끌고 갔기 때문에 젊은이들의 호응이 컸다.

재일한국인 문제를 일본 감독이 다룬다고 해서 특별히 위화감이나 어려움은 없었다. 물론 영화를 만들면서 재일동포들의 애환을 좀더 깊이 있게 알게 된 건 사실이다.

요즘 일본영화가 폐쇄적이고 개인적인 세계에 매몰돼 있는데 거기서 벗어났기 때문에 색다른 영화가 될 수 있었던 것 같다.

한국과 합작 영화를 계속 하고 싶지만 일본인 여성과 한국 남성의 비련 같은 도식적인 건 싫다. 인간대 인간으로 만날 때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들을 다루고 싶다.

부산=이영기 기자leyok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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