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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 속뜻 읽기] 3. 사슴과 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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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십장생 하면 오래 살 수 있는 동물이나 식물 등을 말한다. 이것을 소재로 삼은 십장생도는 사람들이 오래 살기를 기원하는 의도로 그린 그림이다. 그런데 이들 동물 중에서 사슴과 학은 그렇게 오래 살지 못한다. 학은 기껏해야 50~60년 정도이며, 사슴은 수명이 더욱 짧아 15~20년 정도이다.

그렇다면 왜 이들 동물이 십장생에 들어간 것일까. 우리 조상들이 이들 동물의 수명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했던 것일까. 아니면 수명과 상관 없이 어떤 의미를 지닌 동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인가.

학은 신선이 타고 다니는, 천년 이상을 살 수 있는 새라고 한다. 이와 관련해서는 중국의 고사가 전한다. 남극(南極)노인이 항상 학을 타고 구름 사이를 날아다니는데, 이를 곤륜산의 여신인 서왕모가 영접하여 맞이한다는 내용이다. 이러한 고사를 근거로 하여 고려시대에는 일종의 거울인 동경(銅鏡)에 학을 새겨 넣었다. 즉 장수하기를 기원하는 의미로서 이를 선물로 주고 받았다는 풍속이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조선시대에 내려와서는 장수보다는 선비정신을 강조하는 데 학이 이용되었다. 문관의 관복에 학이 그려진 흉배를 달고 다녔던 것은 좋은 예다. 또한 선비들이 입는 옷 중에서 학창의(鶴□衣)는 바로 학의 모습을 본떠 만든 옷이다. 즉 장수를 기원하는 동물에서 고결하고 고고한 선비의 모습을 상징하는 동물로 변화된 것이다.

민간에서는 학을 상서로움의 상징으로 받아들인 예도 있다. 경북 예천에서는 학이 마을에 나타나면 과거 급제자가 생길 것을 알려주는 예조(豫兆)로 받아들였다. 사슴은 학문을 상징했던 학과는 일정한 거리가 있다. 사슴은 일종의 신의 사자, 혹은 신의 의지를 지닌 존재로 이해되었다. 수사슴의 뿔은 다른 동물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뛰어난 형상물이다. 특히 신라시대 왕의 관모가 사슴뿔의 형태를 재현하였다는 예는 그런 의미로서 이해된다.

사슴에 대한 역사기록 중 대표적인 것이 고구려 시조 동명왕과 관련한 내용이다. 길에서 흰 사슴을 잡은 동명왕이 이웃 나라인 비류(비류 백제와는 다르다)의 도읍에 비를 내리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흰사슴을 윽박질렀고, 흰사슴의 애절한 울음소리가 하늘까지 울리자 천제가 7일 동안 비를 내려 비류왕이 항복하였다는 얘기다.

왜 사슴이 그러한 기원의 대상이 되었을까. 당시 사람들은 사슴을 하늘의 뜻을 전해주는 존재로 이해했기 때문이다.『삼국사기』의 기록을 보면 삼국에서 흰 사슴을 잡거나 신성한 사슴을 잡으면 좋은 일이 생길 것으로 믿었다고 한다. 특히 고구려의 태조왕은 사슴을 진상한 신하를 불러 잔치를 베풀고, 그 공적을 바위에 새길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니 사슴은 단순한 동물이 아니라, 사람에게 신의 뜻을 전달하는 존재로 이해됐음이 분명하다.

사람들은 사슴이나 학을 동물학적인 수명과 달리 영원히 살 수 있는 존재로 믿었다. 단순한 동물이 아니라 신들의 세계에서 그들과 함께 사는 존재로 생각한 것이다. 수련과정을 거쳐 신선이 되고자 했던 도교의 교리에도 영생을 기원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담겨 있다. 따라서 신선들과 어울린 사슴과 학을 자연스레 영생의 동물로 믿게 된 것이다.

요즘 사람들이 보양식으로 사슴의 피를 먹는 사례가 종종 보도된다. 하지만 마음이나 육체의 수련 없이 사슴의 피만 먹는다고 해서 영생할 수는 없다. 몸과 마음가짐을 올바르게 한다면 사슴의 피를 먹지 않고도 잘 살 수 있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 아닐까.

<김종대 국립민속박물관 유물과학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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